열 살인 첫째 아이가 몇몇의 친구들로부터 고백을 받았다. 그 일은 의외의 방향으로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평소 친해지고 싶어 하던 남자아이에게 고백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고백해본 적 있어?” “엄마, 내가 이렇게 고백하면 어떨 것 같아?”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말했다. “이 맥락에서 ‘고백’은 정확한 표현이 아닌 것 같아. 그 친구랑 친해지고 싶은 거 아니야? 일단 친해지는 방법을 고민해보면 어때? 섣부른 ‘고백’은 사람을 도망치게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이 하고 싶으면 고백의 목표가 뭔지 생각해 봐." 지극히 어른다운 말을 늘어놓고는 ‘비겁자 주제에!’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고백을 받으면 혼비백산 도망가기 바빴던 자이며, 상대뿐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기는 데에 능했던 자이다. 고로 싱겁고 단조로운 젊은 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몽실몽실한 마음을 드러내고 싶어 하던 순간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무런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품었던 열망.
'열 살 아이에게 ‘고백의 목적’을 묻다니, 나도 참.’ 복잡한 마음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책을 펼쳤다.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이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페터 비에리의 '삶과 존엄’ 3부작 중 두 번째 책이었다. 이 책은 2011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아카데미에서의 강연을 정리하여 묶은 것으로 행복하고 존엄한 삶이 ‘자기 결정’을 통해 가능하다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기 인식'을 통한 ‘자기 결정’은 '문화적 정체성'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 인식의 강력한 도구로 글쓰기를 제안한다. 문득, 지금 아이와 ‘고백’에 대한 글을 함께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나는 사과, 참외, 방울토마토가 예쁘게 담긴 접시를 아이 쪽으로 밀어 주고는 인터뷰 형식의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아이의 답변을 받아 적었다. 좀 더 정확히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연출 위해 여덟 살인 둘째를 먼저 인터뷰했다. 처음에는 하고 싶지 않다던 첫째가 동생의 인터뷰를 들고는 한다고 나섰다. 인터뷰는 좋아하는 친구들에 관한 질문들로 구성되었다. 친한 동성 친구, 이성 친구, 그리고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 대해 묻고 답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첫째 아이를 무릎에 앉혔다. 아이와 수다를 떨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고. 두 사람의 마음이 꼭 같은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같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고. 고백을 하기 전에 상대가 “나는 아니야.”라고 말하는 상황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지만 준비가 되면 언제고 네 마음을 따라가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얼마 전 봤던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이모가(염기정)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고백이 하고 싶었어. 그런데 고백을 했다가 거절을 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 거야. 그래서 동생들한테 고백하는 곳에 같이 가달라고 해. 그 이모가 거절을 당하면 너무 창피하니까 쓰러져서 기억을 잃은 척하려고. 동생들에게 신호를 보내면 사고인 것처럼 자기를 살짝 밀쳐달라고 한 거야. 그런데 그 이모는 정말 거절을 당해. 그래서 동생들에게 신호를 보내는데 그 때 너무 세게 부딪혀. 팔이 부러져서 이렇게 덜렁덜렁한 채로 막 도망을 가. 그 이모는 너무 창피해서 막 울어. 웃기지? 그런데 혹시, 나중에 엄마 도움 필요하면 알려줘. 엄마가 근처에 있다가 네가 신호를 보내면 포켓몬 카드를 막 바닥에 뿌리는 거야. 그 친구의 시선을 끌게. 아니면 물뿌리개를 가지고 나타나서 "너무 덥지?" 하면서 얼굴에 막 뿌려줄게. 그리고 데려가서 눈물도 닦아주고 정말 맛있는 간식을 사줄게.” 아이와 나는 이런 실없는 대화를 주고 받으며 함께 웃었고, 우리는 각자 1mm쯤 자기 인식에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