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돌이 Aug 09. 2021

걷기 예찬

몸의 정체와,머릿속엉킴을 풀어준다

나의 걷기는 10년 주기


대략 10년 주기인 듯. 걷기가 일상이 되는 순간이 있다.

30대 초반 집 앞 보다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30~40분을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서라도 걸었다.

40대 초반 40~50분 거리의 한의원을 걸어 출근했다. 운동화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더운 여름에는 아침부터 땀에 젖어 진료를 할 순 없어서, 운동화와 옷을 배낭에 넣고, 퇴근길에 걸었다. 

걷기는 그러다 어느새 일상과 멀어진다.  


나이가 50을 넘으니 가까운 선후배의 부고 소식들이 들린다. 집안 어르신들의 부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번 다녀오면 2~3주 남의 일이 아닌 듯 정신적 충격에 휩싸인다.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일상의 다른 변화가 필요했다. 

2019년 늦여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사를 해서 직장과 집이 너무 멀어져, 퇴근 후 동백섬을 돌았다. 집에서 출발해 3바퀴 돌고 오면 1시간이 걸린다. 생각해보니 나는 대략 10년 주기로 걷고 있었다.


일주일에 2~3번 걸을 요량으로 시작했다. 집에 뒹굴던 운동화에 오래된 러닝복을 걸치고 걷다가, 한 달 두 달 일상이 되면서, 아디다스 나이키 언더아머 아식스 러닝화, 긴팔 반팔 셔츠, 반바지 긴바지 재킷을 하나씩 사는 재미도 들였다.

일요일 저녁은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월요일부터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피곤하기 싫었다. 일요일 저녁도 걸었다. 오히려 좋았다. 일주일 동안 쌓였던 체기, 특히 주말에 이래저래 많이 먹게 되면서 무거워진 몸을 일요일 저녁 걷기로 풀어주면 월요일 컨디션이 오히려 좋았다.



걷기도 위기가 있다


비가 온다. 아쉽지만 못 걷는다.

저녁 약속이 있다. 또 못 걷는다.

몸이 으슬거리고 아프다. 안 걷는다.

가족들과 주말여행을 가게 되고, 또 못 걷는다.

오늘은 그냥 걸으러 나가기 싫어서 안 걷는다.



걷기는 힐링이다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이 없다. 출퇴근 운전 중에도 유튜브를 듣거나, 통화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발성 연습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혼자긴 하지만 뭔가를 하고 있다.

걸을 때 아파트 출입카드만 가지고 나온다. 아무것도 없다. 그냥 혼자다. 하루 혹은 며칠의 고민들. 가족, 환자, 친구에게서 기분 나빴던 일. 결정을 내려야 할 큰 문제, 작은 갈등. 1시간 동안 머릿속이 시끌벅적하다. 때로는 누군가와 걷는내내 싸우기도 한다. 걷고나면 상대를 이해하고 혼자 화해한다. 


비를 막아주는 후디를 샀다. 가랑비 정도는 맞고 걸어도 문제가 없다. 가까운 약속이면 운동화를 신고 걷는다. 아프면 더 걷는다. 대부분 가벼운 몸살이다. 체증으로 몸살처럼 오는 경우 걷기가 최고의 명약이다. 꺼억하며 체증이 내려가고, 묵직한 몸살은 씻은 듯이 낫는다.  여행지에 걷기 좋은 코스가 있는지 사전에 조사한다. 우울하고, 기분 나쁘고, 귀찮아도 운동화를 신고 나가면 걸어진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서 사뿐 운동화의 쿠션을 느낀다. 한발 한발 통통 튀는 발의 감각이 상쾌하다. 팔을 크게 흔들고 쭉쭉 내딛는다. 여름이면 땀과 함께, 겨울은 시린 손을 비비며 걷는다. 봄가을 기분 좋은 바람과 눈에 띄게 늘어간 동백섬의 걷기 행렬들. 

걷고 나면 복잡히게 꼬이고 흐트러진 머리속이 깔끔히 정리된다. 걷기는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의 황홀이다.


# 메인: pixabay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왜 슬리퍼를 신고 달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