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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돌이 Nov 19. 2021

눈을 뜨니 세상이 늙었다

노화 시리즈 - 눈건강

장모님과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도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수영강변과 90도로 틀어 앉아 강 대신 강변길이 보이는 부모님 댁. 평소 우리 부부의 인사를 받으면 아버지는 왔냐하는 한마디만 남기고 곧장 서재방으로 들어가신다. 돋보기와 안경을 겹쳐 쓰고 컴퓨터와 씨름하신다.  


수술한지 2주가 지났다. 사과를 사서 아내와 들렀더니 안대 없이 안경도 없이 TV를 보고 계셨다.

 "아버님 눈은 괜찮으세요?"

서로 무뚝뚝한 부자의 대화는 아내의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2년만에 세수하면서 내 얼굴을 봤는데 너무 늙었더라."

"수술은 잘 되신것 같네요."

"오랜만에 니 엄마 얼굴을 봤는데 쪼그랑 할머니가 되어 있더라."

어머니는 그럼 늙었지 젊어졌겠냐며 사과를 깎으며 틱틱거렸다. 

"늘 만나던 친구들을 만났는데 전부 쭈글쭈글 할배들이 되어 있더라."




작년 봄 눈이 많이 침침해져 안경을 새로하러 갔더니 시력의 변화는 없다고 했다. 건강검진은 꾸준히 받아왔는데, 나이가 드니 눈검진도 추가다. 주메뉴에 사리 추가도 아닌데 뭐가 자꾸 더해진다. 

집근처 안과를 예약하고 갔더니 나보다 10~20살 많은 노인들로 넘쳐났다. 초진기록지를 작성하고, 안내에 따라 영상촬영도 하고, 태어나 처음보는 갖가지 의료기기들로 눈검사를 했다. 눈은 아직 건강한데, 백내장 초기 증상이 보이니 2년 주기로 검진을 받으란다.


맑은 하늘 아래 세상이 밝고 환한 아침 출근길 어느날. 영화 스크린에 떠다니는 먼지 그림자처럼, 눈 앞에 화학식처럼 보이는 반투명의 벌레가 떠다닌다. 눈을 좌우로 돌리니 따라다닌다. 

눈여겨 본일 없는 일상의 풍경. 정상이 아닌 이상 덕분에 주위를 둘러본다. 좌회전 대기하는 차. 신호등 앞에서 폰을 보는 사람. 내 앞에 직진 대기 중인 차. 아직 빨간 불인 신호등. 하늘은 푸른색. 좌측에는 초등학교. 보이는 모든 풍경 앞에 벌레가 보인다. 

픽셀이 나간 컴퓨터 모니터처럼 눈의 어느 부분이 이상이 생겼나보다. 걱정되고 놀라야 정상 아닐까?  


pixabay 이미지입니다




입주청소가 완료된 새 집으로 이사를 한다. 이사집 정리가 완료되면 대부분 밤이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창밖 풍경을 본다. 깨끗한 유리창문으로 보이는 세상.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 연한 하늘 아래 파란 물결을 가르며 오륙도로 향하는 요트.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사거리. 달라진 일상의 풍경이 뿌듯하다. 

창문을 후려치는 비와 미세먼지로 유리는 점점 흐려진다. 세상 풍경이 점점 뿌옇게 변해간다. 백내장의 증상이 이렇다. 다행히 현대의학의 발달로 유리는 깨끗한 새유리로 교체 가능하다.  


pixabay 이미지입니다


시간은 되돌릴수 없다. 슈퍼맨, 닥터스터레인지는 되돌렸지만 우리는 아니다. 시간과 함께 진행된 우리 몸의 퇴행도 되돌릴수 없다. 목뼈, 무릎연골, 치아, 머리숯, 발귓굼치, 위장, 귀, 그리고 수정체. 몸의 모든 기관은 퇴행한다. 젊은 그때로 되돌릴수 없다. 

10년전 어느날. 방학이라 가족들은 서울 처형댁에 놀러갔다. 후배가 주말에 심심하면 토토가를 보란다. 터보, SES, 김현정, 김건모, 쿨. 나의 20대와 함께했던 가수들이 나온단다. 방송을 보다 펑펑 울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수 없어라고 소리치며 울었다. 


퇴행과 싸울수 없다. 인정하고, 대신 일상을 열심히 살자. 운동은 필수다. 식생활도 건강하게 바꾸고. 필요한 검진도 꼬박 받고. 나이만큼만이라도 건강하게, 아니면 조금더 젋게.


"아버님 잘 보이시니 다행이에요."

"잘 보이는건 좋은데, 세상이 갑자기 모두 늙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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