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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Jun 07. 2024

어지러우니까 그만해!

노화 - 두통과 어지럼증

"어지러움은 우리가 마음의 중심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 세네카 (Seneca)


아이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인 놀이동산. 이름은 다르지만 롤러코스터, 바이킹, 자이로드롭, 범퍼카, 다람쥐통, 회전목마 같은 다양한 기구들이 있다. 앨범 속 필름카메라로 찍힌 사진을 보면, 서울대공원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담겨 있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에버랜드, 경주월드, 통도환타지아 같은 곳에서 디지털카메라에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빙글빙글 도는 놀이기구를 타면 어지러워 멀미가 났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우주비행 훈련을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몇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손잡이를 꽉 잡고 눈을 감은 채 그만 내려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물론 누구에게도 들릴 리 없었지만. 기구에서 내리면 어지럽고 속이 미슥거렸다. 머리를 부여잡고 휘청거리며 비어 있는 벤치에 드러눕기도 했다. 식은땀까지 흘리며 몇 분을 쉬고 나면 좀 진정이 되었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아빠의 손을 잡고 다음 놀이기구로 향했다. 놀이동산에서 멀미패치를 붙인 아빠를 보며 아내와 한참 웃기도 했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지럼증은 일상에서도 나타났다. 코로나 전까지 주짓수를 잠시 했었는데, 몸을 푸는 시간에 앞구르기를 하면 두 번만 굴러도 어지러워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차를 타고 가며 책이나 휴대폰을 보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장거리 여행에 책을 가져갔다가 몇 장 읽지도 못하고 한참을 눈을 감고 멀미를 진정시켜야 했다. 나중에는 아이들이 빙글빙글 돌며 장난치는 것만 봐도 어지러웠다. 식사 중에 아이들이 장난으로 의자를 발로 툭툭 차면 그 진동에 멀미가 나기도 했다. 어릴 때 할머니가 손주들이 방을 뛰어다니면 어지럽다고 제발 그만하라고 하셨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내는 "정말 예민하고 유난스러워."라고 말한다. "내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야."라고 항변해 보지만 억지스러울지 모른다. 지금 어지럼증에 대해 글을 쓰면서 어지러운 상황을 떠올리기만 해도 살짝 어지럽다. 스스로 생각해도 예민하고 유난스럽긴 하다.


가끔은 아침에 잠에서 덜 깬 채 거실로 걸어나오면서 어지럼증을 느낄 때도 있다. 어느 순간 털컥 겁이 났다. 뇌 MRI 검사를 받았는데, 영상의학과 원장님께서 뇌가 나이보다 젊고 건강하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이비인후과 원장님께도 진료를 받았다. 전정기관은 귀 속에 있는 작은 구조물로,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면 이 전정기관의 기능이 저하되어 어지럼증을 느끼기 쉬워진다고 한다. 별다른 이상이 없고 노화의 한 증상이라는 설명이었다.


어지럼증이 느껴질 때 눈을 감으면 덜 어지럽다. 시각 시스템은 외부 환경을 인식하고 공간을 파악하는데, 눈을 감으면 전정기관과의 정보 불일치가 줄어들어 어지럼증이 완화된다. 간단한 팁이지만 증상이 있을 때는 도움이 된다.


나이가 들면서 예상치 못한 증상들이 하나둘 나타나 일상을 방해한다. 이런 증상들은 처음 겪을 때는 두렵고 신경이 쓰이지만, 필요할 때는 의학적인 검사를 받고 큰 문제가 없다면 일상에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놀이기구를 타본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어지럼증이 덜하다. 꾸준한 걷기와 필라테스가 도움이 된 듯하다. 필라테스는 자세를 매우 중요시하는 운동이다. 같은 클래스에서 다른 동작들은 우수하게 해내지만, 한 발을 들고 균형 잡는 동작은 몇 초도 버티지 못했다. 균형을 담당하는 기능이 확실히 떨어진 걸 느꼈다. 몇 달간 꾸준히 운동하면서 균형 잡는 동작도 좋아졌다. 척추 균형이 개선되고, 몸의 근육들이 골고루 자극되면서 어지럼증과 관련된 감각 기관들도 나아진 것 같다.


꼭 필라테스가 아니더라도 유튜브를 보면 증상에 도움되는 동작들이 많다. 폼롤러로 목과 어깨 주변의 근육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밥 먹다가 한 번씩 의자를 발로 툭툭 찬다. 아빠의 과민한 반응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아이들도 이제 많이 커서 놀이동산에 가자고 조를 나이는 아니다. 회전목마 정도는 탈 수 있는데, 아내에게 가자고 조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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