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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Apr 22. 2023

맛있는것도 마음대로 못 먹겠어 - 피부알러지

노화 시리즈

어릴 때부터 내 몸은 질병투성이였다. 명절 때면 어머니는 손자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하며 내 어릴 적 질병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목에 탯줄을 감고 태어나 죽을 뻔한 이야기부터 백일해, 볼거리, 수두, 급성 신우신염 등 거의 모든 질병을 다 앓았고, 장이 예민해 학교 간다고 나갔다가 현관문을 열두 번도 더 열고 들어온 이야기까지. 결혼식 날에도 신랑 입장하는 순간 화장실로 뛰어들어갈 줄 알았다며 웃으셨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묘기대행진’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서커스처럼 묘기를 펼치는 사람, 기억력이 비상한 사람, 특이한 신체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 피부를 긁으면 자극된 부분이 붉게 부풀어 오르는 사람이 나왔다. 내 피부도 그랬다.

엄마는 친척들이 오면 내 등에 손톱으로 글씨를 쓰거나 병뚜껑을 눌러 그 신기한 현상을 보여주셨다. 나는 등을 까고 앉아, 신기해하는 친척들 앞에서 묘기의 주인공이 된 듯 자랑스러웠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얼굴뿐만 아니라 목까지 여드름이 덮여서 우울한 사춘기를 보냈다. 피부가 긁히거나 베이면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았고, 밴드를 붙이면 곪았다. 포경수술 후,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녹는 실이 내 피부에서는 화농을 일으켜, 비뇨기과 의사가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실을 제거하고 주사와 약을 처방해주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일 때 태국으로 여행을 갔다. 배낭여행자들의 천국, 카오산로드. 찌는 듯한 더위에 길가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었고, 작은 딸은 여행 전부터 레게머리를 하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며, 그것 때문에 여행을 따라왔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결국 땡볕에서 2시간 동안 머리를 땋았고, 나는 그 사이에 헤나 문신 샘플책을 넘기다가 큰 뱀을 팔뚝에 그려넣었다.


처음엔 뭔가 멋있었다. 거울 속 내 팔뚝의 커다란 뱀이 나를 강하게 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후, 팔뚝이 가렵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오자 헤나 자국을 따라 붉게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가려움은 극에 달했다. 밤마다 손톱으로 살갗을 긁어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의 고통이 실감되었다. ‘오늘 밤은 덜 가렵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고통은 거의 한 달간 이어졌다.


예민한 피부 덕분에 스킨 로션도 여성용을 사용한다. 작은 불편함이 계속되니 나름대로 피부에 신경을 쓰며 살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음식을 먹고 나면 턱선과 이마가 모기에 물린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가려운 것이다. 외식을 한 날 주로 이런 증상이 나타났고, 때로는 집밥을 먹고도 증상이 나타났다.


이럴 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먹었던 음식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어떤 음식이 원인인지 알고 싶었다. 몇 번 받아주던 아내는 결국 화를 냈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준비한 음식에 왜 시비냐”고. 나는 그저 원인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억울했다.


도저히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알레르기 검사를 받기로 했다. 흔한 진드기, 집먼지, 고양이뿐만 아니라 자작나무, 소나무, 쑥 같은 식물과 곰팡이도 검사할 수 있었다. 또한 우유, 돼지고기, 콩, 호두, 복숭아, 감자, 조개 등 다양한 음식에 대한 반응도 알 수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딸을 태우고 집으로 오는 길에 딸이 물었다.

“아빠, 알레르기 검사 결과 나왔어?”

“응, 아무 이상 없대.”

“뭐? 황당하고 화가 난다. 그게 다야?”

딸은 실망한 듯했다. 매번 내가 음식을 먹고 나서 트집을 잡고, 피부 이상에 과민반응을 보이며, 음식 하나하나를 추적하는 걸 이해하려 했던 모든 노력이 헛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나 역시 허탈했다. 원인을 찾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과는 예상보다 더 큰 실망이었다. 마치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MRI를 찍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은 기분이었다. 큰 고장은 없지만 증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명 원인이 있을 텐데, 그것을 밝혀내지 못하니 답답할 뿐이다.


지금도 가끔 음식을 먹으면 얼굴이 가렵다. 원인은 여전히 모른 채로 얼굴을 긁어댄다. 잠을 못 잘 정도는 아니고, 일상에 큰 지장을 줄 정도의 불편함도 아니라서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다양한 증상들 중 이 정도는 애교로 넘긴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약간의 불편함이 있지만 여전히 쓰는 만년필처럼, 내 피부도 적당한 불편함과 함께 살아간다.





참고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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