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 비염
"때로는 숨 쉬기 힘든 순간들이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들을 찾게 만든다."
— 메리 앤 라드마허 (Mary Anne Radmacher)
알람 소리에 잠을 깬다. 사각거리는 인견 이불의 싸늘함이 기분 좋다. 셔츠가 땀에 흠뻑 젖어 헉 하고 깼던 무더위의 기억은 이제 뇌 한구석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눈을 감은 채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짓는다. 하루를 여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다.
커튼을 열어 방을 빛으로 가득 채운다. 거실로 나오면 아내가 "일어났어?"라며 과일과 야채를 믹서기로 갈기 시작한다. 아침은 차인표의 멜로 드라마처럼 시작되지만, 곧 칠봉이의 코미디로 바뀐다.
"에취~!" 다시 "에취~!"
콧물이 쏟아진다. 화장실로 달려가 코를 풀고 씻는다. 주스를 마시며 연신 코를 훌쩍인다. 다시 재채기를 하고 화장실을 달려간다.
원래 비염 증상은 있었다.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콧물이 나고, 술을 마시면 코가 막혔다. 긴장하면 킁킁대는 버릇도 있다. 살면서 큰 불편은 없었지만 가끔 "비염 있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코로나가 시작된 그해 가을, 비염은 차원이 달라졌다. 콧물, 재채기, 코막힘이라는 교과서적인 증상이 매일 아침을 지배했다. 출근길 내내 콧물이 줄줄 흘렀고, 아침 회진 중에는 마스크 속에서 흐르는 콧물 때문에 중간에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그렇게 고생하던 비염이 코로나 제한이 완화된 어느 가을, 증상이 조금 나아졌다. 콧물과 코막힘이 있긴 했지만 줄줄 흐를 정도는 아니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매일 아침 아내가 갈아준 과일과 야채 주스를 마신 덕분인가 싶었다.
겨울이 되자 다시 증상이 심해졌다. 재채기와 콧물이 시작됐고, 매일은 아니지만 유독 심한 날들이 있었다. 혹시 규칙이 있을까? 셜록 홈즈처럼 증상이 심한 전날의 식단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짐작은 했지만, 문제는 음식이었다.
아내는 평소 건강 관련 도서를 많이 읽는다. 과자가 비염의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탄수화물과 과자가 장내 유해균을 증가시켜 비염을 유발할 수 있단다. 의학적으로 유의성이 있다고 보긴 애매했지만, 과자의 성분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코로나 시기, 회식과 모임이 줄어들면서 나는 매일 밤 와인을 한 잔씩 마셨다. 안주는 냉동식품이나 과자가 대부분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와인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지만, 겨울이 되면서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과자 안주가 따라왔다. 넷플릭스를 보며 과자를 먹는 습관도 여전했다. 먹은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콧물과 재채기가 찾아왔다. 며칠간 과자를 끊으니 비염 증상이 확실히 줄었다. 먹은 날은 예외 없이 심해졌다.
같이 근무하는 이비인후과 원장님께 진찰을 받았더니, 비강 내 염증이 있긴 하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체질이 변하고, 몸의 어떤 부분은 음식과 환경에 더 민감해짐을 느낀다. 비염은 원래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더 자주 증상이 나타난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는데, 아침의 재채기와 콧물을 생각하면 먹지 말아야지 싶지만, 결국 ‘조금은 먹자’고 스스로와 타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