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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돌이 Mar 30. 2022

눈 수술을 하라구요?

노화시리즈 - 노안 이야기

1982년 중2 하교길 전자오락실에는 갤러그가 있었다. 한판이 두판이 되고, 30분만 하고 가자던 다짐은 다음날 1시간이 되었다. 어느날은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나 집으로 갔다. 해는 저물어 거리는 가로등이 밝히고 있었다. 엄마한테 잔뜩 혼날 각오를 해야했다. 스스로도 한심하다 생각하며 가로등을 올려보는데 불빛이 흐릿했다. 전에는 이러다 다시 또렸해 졌는데 집 가는 길 내내 흐리게 보였다. 그날 이후 세상과 나 사이엔 안경이 있었다. 


40대가 되면서 안경을 써도 책의 글씨가 희미하게 잘 안보였다. 오후가 되면 눈이 뻑뻑하고, 한번씩 따갑고 아프기까지 했다. 겨울에 찬바람을 맞으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얼마전부터 깨진 모니터의 픽셀처럼 눈 앞에 정체불명의 벌레가 떠다닌다. 

눈은 살면서 내 몸에 가장 잦은 고장을 일으킨 기관이지 싶다.



첫번째 고장


국가고시 준비를 시작할 때 즈음 본과 4학년 여름. 눈에 뭐냐고 친구들이 묻는다. 눈꺼풀을 뒤집어 보니 눈밑이 붉게 부풀어 있다. 아침해가 떠오르듯, 매일 조금씩 눈밑에서 붉은 살갗 덩어리가 눈위로 떠오른다. 


학교 밑 버스정류장 앞에 안과가 있었다. 수업시간까지 여유가 있는 날을 골라 안과로 올라갔다.

"어떻게 오셨어요?"

"눈에 뭐가 나서요."

접수하고 10분쯤 대기하니 원장실로 안내되었다. 원장님은 눈을 까뒤집어 보더니 눈안의 살갗이 자라는거고, 수술로 잘라내야 된다고 했다. 

"네? 수술요?"

주사 맞고, 내복약이랑 안약 처방 받으려고 왔는데, 수술? 다른 부위도 아니고 눈인데. 큰 병원에 가야하나? 흉터가 남을까? 실명 되는건 아니겠지? 국가고시 준비는? 보험 든것도 없는데 수술비가 수백만원이면?

"누우세요!"

원장님 책상 옆 벽쪽에 작은 침대가 하나 있었다. 

"네?"

"지금 바로 수술할 꺼니까 누우세요."

대기실에 환자도 많던데 이후 일정은 어쩌실려고? 게다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이런 환경에서 수술을 하실꺼라구요? TV에서 봤는데 위에 커다란 조명도 있고, 수많은 모니터에 수술복을 입은 의사 간호사들이 수두룩한 수술방에서 해야하지 않나? 그냥 나가고 싶다. 부모님에게 말해야 하지 않나? 수술 동의서는?

"저 돈도 없는데요."

마취하고 자라난 살깣을 살짝 잘라내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고 몇분 안 걸린다. 의료보험 되니까 2만원도 안넘는다. 걱정말고 누워라 했다.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말 몇분만에 끝났다. 눈에 안대를 하고 나오니 간호사가 약을 내민다. 

"하루에 세번썩 드세요 세번썩."

뽀얀 피부에 동그란 눈이 이쁜 간호사의 세에번썩이라는 진주사투리에 핏 웃음이 났다.



두번째 고장


노안이 시작된 40대 초반. 아내가 내 눈을 보더니, 오른쪽 눈 안쪽에 다래끼 같은거 뭐냐고 묻는다. 거울로 보니 안쪽이 뻘겋게 부어 있다. 별불편함이 없어 그냥 지나쳤는데, 점점 자라서 눈 안쪽 사분의 일을 덮었다. 

직장 바로 옆에 1년전에 생긴 안과가 있었다. 오후 조금 한가한 시간에 직원들에게 1시간쯤 근처 병원에 다녀 오겠다고 말하고 나섰다. 


"눈물샘이 막히면서 커진 겁니다."

원장님은 눈을 까뒤집어 보더니 말했다. 

"약 먹으면 될까요?"

"잘라내야 됩니다."
원장님은 책상옆 침대에 누우라고 했다.

간단한 수술일꺼고, 의료보험 될꺼고, 1주일 안대하고 세수 안하면 되겠지.

여기서요? 지금요? 위험하지 않아요? 비용은요? 이런 질문들을 쏫아내야 하는데 낮잠을 자러 눕듯 1초도 꺼리낌 없이 누웠다. 대범함에 의사와 간호사를 당황시키고 싶었다. 


수술이 끝나고 원장님은 간단한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앞에서 처방전을 받아가라했다. 평소 희미함, 뻑뻑함, 눈물, 벌레 이야기를 물었다. 치료가 가능할지 아니면 대기실 벽면에 홍보포스터의 눈건강 영양제가 도움이 될런지 묻는데 원장님이 간호사에게 눈짓을 했다. 간호사는 재빨리 대기실로 이동시켰다. 바쁜 원장님께 이런 장황한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1초도 꺼리낌 없이 수술을 돕지 말았어야 했다.    



세번째 고장


"눈에 그거 뭐야?"

아내가 묻는다.

눈물샘 쪽에 노랗게 익은 여드름처럼 뭔가 볼록 쏫아 있다. 전에 이런게 났을때 눈꺼풀 위로 여드름 짜듯이 눌렀더니 폭하고 터지면서 고름 같은게 나왔었다. 눈꺼풀 위로 눌렀더니 딱딱하다. 알갱이는 점점 커졌고 색깔이 희고 노래서 눈에 더 띄었다. 또 안과에 가야겠군.

 

2박 3일 여름 휴가를 떠났다. 오랜만의 가족여행. 1박을 하고 다음날 오전 간단히 쇼핑을 했다. 린넨 소재 여름 셔츠들이 10만원 초반대 가격. 나쁘지 않았다. 몇몇 브랜드를 둘러보는데 눈에서 뭔가 툭하고 떨어진다. 눈와 안경 사이에 끼어있다. 안경을 살짝 들어 뭔가를 찾으니 고려은단 크기의 덩어리가 만져진다. 닭이 알을 낳듯 눈이 알갱이를 쏙하고 토해냈다. 화장실에 가서 눈을 뒤집어 보니 깔끔해졌다. 안과에 안가도 되었다.



그리고 ...


시력은 계속 나빠졌다. 드디어 검사지의 글씨가 안보이기 시작했다. 안경을 살짝 들어야 글씨가 보였다. 물건을 살때도 안경을 들어서 글씨를 봐야 했다. 안경을 머리에 올리고 폰을 보던 친구가 이해가 되었다. 돋보기는 책을 볼때나 편했지 일상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운전, 강의, 독서용 안경을 2~3개씩 가지고 다닌다는 교수님이 이해가 되었다. 안경과 돋보기도 컴퓨터 모니터의 글씨는 깔끔하게 해결해 주지 못했다.


이런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다초점렌즈를 하시면 됩니다."라고 안경사님이 말했다.

써보니 정말 편했다. 등산할때 땅이 흐릿하지 않았다. 차 안의 오디오 화면도 또렷하게 보였다. 쓰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더니 정말이었다. 다만 TV를 볼때 소파에 등을 기대고 반쯤 누워 턱을 내미는 자세는 가까운 곳을 보는 렌즈의 아랫부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화면이 흐리게 보였다. 등을 꽂꽂이 세우고 턱을 당겨 바른 자세로 봐야 하는 불편함이 생겼다.   


그리고... 안경테보다 몇배나 비싼 다초점렌즈 가격 때문에 안경테를 한번씩 바꾸는 취미생활을 즐기기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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