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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Mar 07. 2024

남자의 자존심

노화 - 소변

"밤중에 잠에서 깨는 것은 노화의 징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조차 삶의 소중한 일부로 받아들이라."

— 조지 번스 (George Burns)


아랫배의 불쾌한 느낌에 잠에서 깬다. 일어나기 귀찮아 잠시 참아보지만, 점점 부풀어 오르는 방광 때문에 결국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다시 잠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숙면을 방해받으면 누구나 짜증이 난다. 외부적인 이유라면 탓할 대상이라도 있겠지만, 몸에서 일어나는 문제라면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기본적인 욕구는 늘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라기 마련이다.


전립선 비대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현상이다. 전립선이 점점 커지면서 몸속의 ‘수도관’을 압박하게 되고, 그로 인해 몇 가지 불편한 증상들이 생긴다.


소변을 다 본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덜 잠긴 수도꼭지처럼 몇 방울이 떨어진다. 변기 앞에 서면 소변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소변이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나오는, 마치 수압이 약한 물총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처음에는 남자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기분이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체중 관리도 잘하고 있었다. 매년 건강검진에서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기에, 이런 소변 문제는 ‘아저씨들’에게나 생길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상쾌하게 소변을 보고 하루를 시작하던 평범한 일상이 어느 순간부터 소변이 쉽게 나오지 않고, 중간에 끊겼다 나오는 불편한 현실로 바뀌었다. 소변이 팬티에 방울방울 묻어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자존심이 서서히 무너졌다.


노화 때문에 예전에 없었던 다양한 증상들은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소변은 느낌이 달랐다. 다른 노화의 신호들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던 최후의 보루를 내어주는 기분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주변에 물어보니 내 또래 대부분이 겪고 있는 문제였다. 굳이 드러내지 않고 각자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마치 시험이 나만 어려웠던 게 아니라는 친구들의 공감처럼, 그 사실이 묘한 위로가 되었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이제는 이 또한 노화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랜 시간 이어온 취미도 있지만, 그때그때 새로운 취미에 끌리기도 한다. 늦은 저녁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싶었다. 커피나 홍차는 불면증을 유발할까 걱정돼 대신 허브차를 선택했다. 카모마일, 민트, 로즈힙, 히비스커스 등 다양한 허브차를 구비하고, 백화점에서 예쁜 티팟과 찻잔을 샀다. 천으로 된 티백이 좋다고 해서 종이 티백보다 비싸지만 나만의 작은 여유를 챙겼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티팟에 차를 우려내고, 노랗게 혹은 붉게 우린 차를 찻잔에 담아 한 모금 마시면,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가슴으로 퍼진다. 카모마일의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책을 읽으면, 한층 여유롭고 삶이 고급스러워지는 느낌마저 든다. 아내도 그런 나를 보며 차 마시는 취미가 좋아 보인다며 응원해준다. 주말에는 함께 예쁜 찻잔을 보러 가자는 제안까지 했다.


새로 찾은 일상의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밤에 차를 마시고 자면 한 번, 혹은 두 번 잠에서 깬다. 소변이 고상한 취미를 꺾어버렸다. 점점 차를 마시는 횟수는 줄어들었고, 예쁘게 늘어놓았던 찻잔들엔 먼지가 쌓이고 있다.


노화는 분명 불편하다. TV 속에서 즐거운 노년을 보여주는 광고가 나오지만, 현실은 희노애락이 섞인 복잡한 일상의 연속이다. 젊다고 마냥 행복한 건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몸의 변화와 불편함은 때때로 더 막막하게 다가온다. 몸의 기능이 하나씩 퇴화하면서 무언가 큰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두려워지기도 한다.


병이 나면 회복 속도도 더디고, 마음도 예전처럼 강하지 않다. 흰머리와 주름이 늘어가면서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잃어가고, ‘나이는 그저 숫자’라는 말이 더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노화는 아름답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고 멈출 수는 없다. 노화는 맞서기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체력도, 생각도, 의지도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에 맞게 몸과 마음을 다시 조율해야 한다.

근력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코로나 이전에는 격투기까지 했었다. 일정이 바빠 잠시 멈췄지만, 이제는 내 몸에 맞는 새로운 운동을 찾고 싶어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필라테스가 그저 고상한 척하는 사치스러운 운동처럼 보였다. 정적이고 지루할 것 같다는 선입견도 있었다. 해보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필라테스는 온몸의 근육을 골고루 사용하는 운동이었다. 유연성뿐만 아니라 코어 강화에도 효과적이었고,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이 필요했다. 매 수업마다 작은 미션 동작을 성공할 때마다 성취감도 느낄 수 있어, 단순한 운동 이상의 재미를 주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끝없이 새로운 기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과 행동이 변하듯, 그 변화에 맞춰 더 나은 일상을 만들어가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스스로 행복을 키워가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 단호히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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