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 관절의 퇴행
"고통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 존 밀턴 (John Milton)
연세 지긋한 분들이 진료실에 와서 자주 하시는 말이 있다.
“내가 한 번도 허리 아픈 적이 없었는데, 왜 아프지?”
관절과 근육을 50~60년이나 사용했음에도 아프지 않을 거라고 믿으신다. 노화로 인한 퇴행성 변화를 간단한 치료 몇 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지만, 사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증은 8월 한여름에 갑자기 찾아왔다. 처음에는 늘 그렇듯 목과 어깨에 생긴 담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파스 하나 붙이면 나을 거라 생각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도 통증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졌다. 마치 거대한 손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봄에 헬스장에 갈 시간이 나지 않아 집에서 푸쉬업 기구를 사서 운동을 시작했었다. 처음엔 10개도 겨우 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50개씩 3~4세트를 해낼 정도가 되었다. 아내는 어깨 운동만 무리하게 해서 통증이 생긴 것 같다며 당분간 푸쉬업을 쉬라고 했지만, 그럴 리 없다고 계속 운동을 했다. 그러나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운동을 중단했다. 어깨 근육을 빨래 짜듯 쥐어 짜는 듯한 통증에, 환자분들이 말하던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목과 어깨에서 시작된 통증은 서서히 어깨 관절과 팔로 이동했다. 마치 거인이 내 팔을 뜯어내는 듯한 고통이 이어졌다. 강한 전류가 팔을 관통하는 듯한 저릿함 때문에 팔을 내리고 있을 수 없었다. 팔을 들어야 저림이 줄어들어 자거나 깨어 있을 때나 왼팔을 계속 들고 있어야 했다. 왼팔을 목 뒤로 받쳐야 밥을 먹을 수 있었고, 거의 눕다시피 앉아 진료를 보기도 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목디스크 증세가 내게도 찾아온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통증이 사라지길 바랐지만, 결국 팔을 부여잡고 거실로 향하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영상의학과에서 검사를 했다. 50대에 흔히 나타나는 관절의 퇴행성 변화였고, MRI 결과 협착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 달 정도는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나이 앞자리가 5로 바뀌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40대에 멈춰 있었다. 환자들에게는 몸의 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스마트폰 셀카로 찍은 내 모습을 실재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꾸준히 운동을 했고, 뱃살도 거의 없는 보기 좋은 체형이었다. 내 몸은 30대라고 자부했지만, 그 자존심은 X선 사진 한 장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당황, 놀라움, 짜증. 사진 속의 목은 50대의 퇴행성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흰머리는 드문드문 나더니 점점 영역을 확장해 가고, 머리숱은 적어졌으며, 피부는 늘어지기 시작했다. 외형적인 변화는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염색하고, 관리하고, 시술받으면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뼈는 달랐다. 지금껏 환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했던 말들이, 얼마나 정 없게 들렸을까?
검사 결과는 명확했고, 무엇보다 통증 때문에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워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처음 몇 번은 호전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치료 후 다음 날, 팔과 어깨를 짓누르던 압력이 점차 줄어들었고, 이제는 잠을 설칠 일도 없고, 팔을 내리고 있어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노화는 남들도 나도 쉽게 인정할 수 있지만,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막연한 추측으로 넘기기 쉽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과도한 자신감과 함께 근거 없는 두려움도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기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큰 통증을 겪고 나니, 연골이 다 닳아버린 환자들이 빨리 고쳐달라고 하소연하는 심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아프니까 정상적인 일상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그런 분들의 마음을 공감하지 않고, 상황 인식부터 시키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프고 나니 이전과 달라진 일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들과 1박 2일 여행을 갔는데, 예전에는 아이들보다 더 활기차게 뛰어다니던 내가, 운전하는 아내 옆에서 졸고, 카페에서 졸고, 심지어 욕조에서도 졸고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전 5번 이상 수정하겠다던 다짐은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기억이 났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예전에 지도를 받았던 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운영하던 센터를 후배에게 넘기셨다며, 그 후배를 소개해 주셨고, 주 2회 PT를 시작했다. 책상 옆에 쌓아둔 책들을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고, 늦게 퇴근해도 동백섬을 걸었다.
50대는 가만히 있어도 근력이 줄어든다. 내장 기능, 의지, 체력, 뇌의 회전력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20% 더 노력해야 겨우 현상을 유지할 수 있다. 노화에 저항하는 발버둥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내 몸에 대한 애정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