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 청력
"나이 듦이란 단지 소리를 덜 듣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음을 걸러낼 줄 아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는 동안 아내는 야채 주스를 준비한다. 탄수화물을 아침에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야채 주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다양한 야채와 과일의 조합을 맛본다. 때로는 냉장고에 남은 애매한 야채들도 함께 갈린다.
샤워를 하면 가끔 한쪽 귀가 막히곤 한다. 고개를 돌려 콩콩 뛰면 막혔던 물이 흘러나와 귀가 뚫린다. 그런데 요즘 따라 귀가 자주 막힌다. 제자리에서 뛰어도 귀가 뚫리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왼쪽 귀만 그렇다. 면봉으로 후비적거려 보지만 여전히 귀가 막혀 있다.
먹먹한 채로 출근한다. 오전 동안 귀에 신경 쓸 틈 없이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귀가 뚫려 있다. 샤워 후에 귀가 막혀도 점심 전에 뚫리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귀 안의 관이 좁아졌거나, 내부 압력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이 귀 안에서 잘 빠지지 않는 것 같다. 다양한 신체의 노화에 일일이 대응할 수는 없다. 작은 고장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자.
이제는 아침에 막혔던 귀가 하루 종일 뚫리지 않는다. 아침보다는 덜하지만, 꽉 막힌 틈새로 아주 작은 틈이 생긴 정도다. 마치 몸 왼쪽에 커다란 벽이 생긴 듯 답답하다. 귓불을 잡아당기면 삐걱 소리가 난다. 귀 주위 경혈을 누르고, 코를 막고 귀를 뚫으려 여러 방법을 써본다. 그러다 보면 다시 '뽕' 하고 뚫리면서 잠잠하던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찬다.
매년 정주행하는 드라마가 있다.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한 베토벤 바이러스다. 여주인공 두루미는 뇌질환으로 청력을 잃어간다. 지휘자 강마에는 그런 두루미에게 "귀가 먹으면 음악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고. 소리가 사라진다고!"라고 말한다. 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한 청각 상실이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을 잃는 일이다.
두루미는 결국 바이올린 연주를 포기하고 작곡 수업을 듣는다. 두루미는 가방에서 보청기를 꺼낸다. 나도 혹시 보청기를 써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밀려온다.
노안은 다초점 렌즈로 해결했고, 어깨 통증은 한 달간 치료를 받아 나았다. 그런데 귀는? 보청기? 이건 작은 문제가 아닌데... 불안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
며칠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귀가 막혀 있고, 샤워를 하면 더 심해진다. 귀가 짓눌리는 듯한 무거운 느낌이 든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근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초진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진료실에 들어서니 50대로 보이는 원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가제트 팔' 같은 도구들로 가득한 의자에 앉으라고 하셨다. 살짝 긴장이 된다.
"귀 안을 좀 볼게요."
의사 선생님이 귀 안을 들여다보고는 말했다.
"귀 안이 꽉 막혀 있었네요."
귀 안에 쌓인 귀지를 집어냈다. 그 순간, 칠흑 같던 어둠이 순식간에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왼쪽 귀가 시원하게 뚫리면서 그동안 나를 짓누르던 압력도 사라졌다. 소리가 다시 제대로 들렸다.
"이게 귀를 꽉 막고 있었어요. 샤워할 때 물이 들어가면서 부풀어 오르고, 마르면 조금 나아졌던 거죠."
면봉으로 귀를 후비면서 상처가 생겼고, 그 상처에서 나온 농과 귀지가 엉켜 덩어리가 생긴 것이었다. 앞으로는 면봉으로 귀를 강하게 자극하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보청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말은 내게 너무나 다행스러운 소식이었다.
몇 달 후, 비슷한 증상이 다시 생겨 이비인후과를 재방문했지만 이번에는 귀가 깨끗했다. 의사는 "심리적인 영향일 겁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