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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May 25. 2023

젊어 보인다는 말이 싫어질때

노화 시리즈 - 서문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친구들의 결혼이 이어졌다. 동기들 중 미혼은 몇 명 남지 않았다. 마음 맞는 친구 몇 명이 일과를 마치고 모여 공부를 했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만화 시계를 풀어 소파에 던지듯 말하길, 내가 30대 중반처럼 보인단다. 이제 막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졸업하려던 나의 나약한 의지가 그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졌다. 그 이후 모임이 이어졌는지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말만은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있다.


결혼 후 아내는 몇 년에 걸쳐 나의 스타일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5천 원짜리 커트는 1만 5천 원짜리로, 얼굴을 덮은 큰 안경태는 깔끔한 것으로. 권상우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옷은 몇 벌만 남기고 몽땅 정리했고, 평소에 근처도 가지 않던 백화점으로 나를 이끌어 가며 아내는 내 옷차림에서 무심한 시간을 하나씩 덜어냈다. 여드름 흉터로 울퉁불퉁한 피부를 정리하려 피부과에도 같이 다녔다. 몇 번의 박피와 관리 덕분에 피부도 깔끔해졌다.


40대에 접어들며 나이를 밝히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한동안 동안이라는 말을 즐겼다. 나보다 4살 어린 후배와 함께 다니면 언제나 내가 동생이 되었다. 그 순간들이 내심 즐거웠고, 풍성한 머리숱도 한몫했다.


하지만 숫자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나이의 앞자리가 5로 바뀌면서 또 한 번의 충격이 왔다. 더 이상 동안이라는 말을 들을 수 없었고, 이제 사람들은 내 나이에 맞게 나를 보기 시작했다. 나이를 말하는 것이 점점 불편해졌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젊어 보인다’는 말도 더 이상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다. 그 말이 오히려 진짜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 같았다. 동안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한층 더 무겁게 했다.


그나마 코로나 초기까지는 방송 출연, 인터뷰, 유튜브 촬영 때문에 외모에 꾸준히 신경을 썼다. 피부에 좋은 주사도 맞고, 피부 관리도 받으며, 매일 저녁 시트팩을 붙였다.


그러다 잊고 살았다.


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외모에 대한 관심도 점차 줄어들었다. 마스크를 항상 쓰고 다닌 것도 한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마치 돌보지 않은 화단에 잡초가 무성해지듯, 나이는 외모에 대한 애정도 서서히 잡아먹었다.


오랜만에 시트팩이라도 붙여볼까 서랍을 열어보니,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있었다. 도대체 몇 년이나 방치한 걸까? 거울 속 늘어진 얼굴과 칙칙해진 피부를 마주하는 것이 싫어졌지만, 시트팩 하나 붙일 의지도 사라져 버린 나이. 젊음을 유지하려는 욕망마저 사라진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나이를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제서야 우리는 진정으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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