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 외모의 변화
"주름은 단지 피부 위의 흔적이 아니라, 세상과 내가 마주했던 모든 순간이 새겨진 역사이다."
— 엘리자베스 쿠블러 로스 (Elisabeth Kübler-Ross)
과학의 발달로 많은 질환이 조기에 진단되고, 일부 장기는 대체가 가능하다. 인공심장, 인공관절, 인공 피부, 치아도 임플란트로 대체할 수 있다. 백내장도 수술할 수 있고, 귀는 보청기를 끼면 된다.
물론 성형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거울 앞에서 마주하는 외모의 변화는 결국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머리숱이 적어지고, 흰머리가 뒤덮고, 탱탱하던 피부는 주름이 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나 “너도 늙었네”라는 말은 같은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인사다. 어릴 적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친구가 늘 "어머니,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라고 대문에서부터 인사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겸손하게 "뭐가 안 늙어"라고 하셨지만,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좋으셨을까?
나이가 들었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 있다. "살 빠지셨어요." 코로나 전에 봤던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몇 년 만에 만나며 했던 말이다. 처음 몇 사람한테 들을 때는 그려려니 했지만, 여러 사람에게 듣다 보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는 게 병이다. 나이가 들면서 체중의 급격한 변화는 당뇨와 암을 떠올리게 한다. 유전적 소인도 있다. 건강검진에서 위내시경 결과 위축성 위염, 위벽이 얇다, 장상피화생 등의 소견을 들으니 더 걱정이 된다. "살 빠지셨어요"라는 말은 단순한 외모의 노화가 아니라 건강에 대한 불안을 자극한다.
머리숱? 아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젊었을 때는 나이보다 들어 보이는 게 스트레스였겠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도 풍성한 머리숱 덕분에 결국 당신이 최종 승자야." 물론 이마가 조금씩 넓어지고 머리숱도 예전만 못하지만, 또래에 비해 풍성한 편인 것은 맞다.
흰머리? 염색약 부작용 때문에 진작에 포기했다. 천연 재료라 안전하다고 해서 테스트를 해봤지만, 반나절 만에 피부가 부풀어 올랐다.
코로나 동안 회식이 줄면서 자연히 음주도 줄었고,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하고 아침마다 건강한 야채주스를 마신 덕분인지 위내시경 결과 위장이 이전보다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혈액검사 결과도 별 이상이 없다. 콜레스테롤 수치조차 정상이었다. 체중도 늘 64kg 내외로 일정하다.
확실히 얼굴살은 빠져 보인다. 사진을 보면 코로나 전에는 지금보다 얼굴이 통통하다. 마치 물기가 마른 나뭇가지처럼, 얼굴의 엘라스틴 층이 얇아지고 피부가 쳐지면서 살 빠진 듯 보이고 외모적으로도 더 나이 들어 보인다.
노화로 오는 육체적 고통은 절뚝거리며 걷거나 휠체어를 타지 않는 한 남들이 쉽게 알아채기 어렵다. 하지만 외형적인 변화는 주변 사람들이 금세 알아본다. 오랜만에 만나 "정수리 머리숱이 줄었네"라는 말은 인사가 아니라 언어폭력이다. 요즘은 스마트폰 앱으로 얼굴을 보정하며 자기 얼굴을 매일 보는 시대다. 십 대들만큼 외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이는 내가 먹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먹게 한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고 싶지만, 주변에서는 주례가 더 어울린다고 한다. 골프채를 사러 갔을 때 "시니어분들은 이게 좋다"고 권한다. 운동을 하러 갔더니 내가 최고령이었고, 다행히 한 명이 더 와서 그다음이 되었지만, 수십 명의 회원들이 전부 조카뻘이었다. 시장에서 ‘어머님’이라는 말에 화가 난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얼마 전 ‘아버님’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 기분을 공감하게 됐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피부 노화에 좋다는 광고를 보고 제품을 주문했다. 아이들은 "아빠가 왜 피부 건강에 신경 써?"라며 웃었다. 염색은 못하지만, 코팅은 괜찮을 거라는 미용실 원장의 말에 솔깃했다. 병원에서만 받던 피부 관리를 이제 집에서도 할 수 있다며 장안의 화제라는 제품이 있다는 아내의 말에, 겨울 코트를 살까 그 제품을 질러볼까 고민 중이다. 같이 일하는 원장님이 유명한 피부과 원장님과 친하다고 해서, 함께 가보자고 농담처럼 말해봤지만 가자는 말이 없는 걸 보니 정말 농담으로 들렸나 보다. 예전에 피부를 전문적으로 하신 원장님께 피부 노화에 좋은 약침이 있는지 슬쩍 물어본다.
"살 빠지셨어요"라는 말에 대한 걱정이 해소되자, 이제는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이 듣기 싫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