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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돌이 Feb 07. 2022

나이가 들면 입천장이 잘 까진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막상 나이가 되면 그런 말 안 나온다

나이가 드니까 입천장이 자꾸 까져요. 진료하면서 환자분에게 들었지 싶다. 우연인지 이 말을 듣고부터, 올 겨울 유난히 입천장이 자주 까진다. 살면서 입천장을 얼마나 인지하며 살았을까? 아프면 아무 일 없이 지낼 때가 얼마나 감사한지 그제야 느낀다. 낫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지만.

입천장이 까지면 계속 신경 쓰인다. 수시로 혀는 입천장을 문지른다. 상처가 아물기 전까진 입천장은 소통을 그만할 생각이 없다.


점심시간이 되면 직원식당으로 내려간다. 매번 따뜻한 국이 나온다. 냉이된장국, 재첩국, 아욱 된장국, 육개장, 소고기 뭇국, 조개 미역국. 계절별로 다양하게 바뀌는 메뉴 덕분에 매일 먹어도 지겹지 않다. 야간진료가 있는 날은 저녁도 직원식당에서 해결한다.  

야간진료가 있던 수요일 저녁, 가스불에 데워지고 있는 국을 한가득 떠서 후다닥 먹고 올라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혀가 입천장을 확인한다. 또 까졌다. 나이가 들면 정말 자주 까지는구나. 

문제는 이틀 뒤였다. 까진데 또 까졌다. 살짝 까진 거랑 느낌이 다르다. 혀가 스치기만 해도 따끔거린다. 뜨거운 국은 아예 못 먹겠다. 딱딱한 음식은 먹다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 상처가 꽤 깊은지 며칠이 지나도 나을 생각이 없다. 나이가 들면 회복 속도도 느린 걸까?


나이가 들면 입천장이 자주 까진데요. 같이 진료하는 원장님과 점심 식사를 하며 말을 꺼냈다. 이번 주는 까진데 또 까져서 밥 먹기도 불편해요. 나이가 들면 피부가 연약해져서, 면역저하로 피부가 외부 손상에 취약해서 등의 의학적 공감을 기대했다. 


"저희 아버지도 그래요."

나이가 들면 음식을 급하게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뜨거운 국을 급하게 드시더라구요. 

아이들은 음식이 조금만 뜨거워도 안 먹는다. 엄마가 후후 불어 식혀줘야 한다. 




나이를 핑계로 안주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이 50대. 몸의 변화가 시작된다. 눈이 침침하다. 갈수록 추위를 많이 탄다. 피부의 수분이 줄어 겨울이면 각질이 장난 아니다. 없던 흰머리가 늘고, 눈썹도 흰털이 올라온다. 얼굴 피부는 쳐지고, 주름도 생긴다. 점심을 조금 과하게 먹으면 저녁까지 소화가 안된다. 


어느 해부터인지. 11월 찬바람이 시작되면 몸이 이상하다. 아침 눈뜨면 상쾌함 대신 몸살끼로 시작한다. 코가 막히고, 미열, 오한, 근육통이 2월 입춘 때까지 계속된다. 영양제도 맞고, 안 먹던 보약도 챙겨 먹었다.

내과 전문의 후배에게 가서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몸에 별 문제는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증상이 계속되는 거지?

"늙어서 그래요 선배. 저도 그래요."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빠짐없이 걷기. 야간 진료하고 늦게 들어와도 걷기. 주 2회 근력 운동하기. 탄수화물, 인스턴트 줄이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내 나이 돼봐라 그런 소리 나오는지. 아니다. 바꿔 생각하면 뭔가를 하는데 나이를 붙이는 게 이상하다. 20대에 턱걸이 20개를 도전하면 당연하고, 50대는 대단하다? 가족 팽개치고 무모하고 무책임한 철부지 가장이 되자는 것도 아닌데. 


사놓고 쌓여만 가는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20대 때 작가가 되고 싶었다. 공부, 결혼, 일, 나이를 핑계로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기억에도 없던 브런치에 올린 글 2개. 페이스북에도 몇 개. 블로그에도 몇 개. 인생의 선 중간중간 점처럼 글의 흔적들이 있었다.


2021 신춘문예 당선소실집을 읽었다. 당선작보다 더 오래 기억될 심사평의 한 구절.


올해 응모작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50, 60대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부끄럽다. 내가 안주한다고 남들도 그런 줄 알았다. 도전과 나이는 무관하다. 내게도 도전의 기회가 올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백영옥님의 빨강머리 앤을 읽으며 지금껏 가슴에 새기고 있는 글구다. 


2주 동안 뜨거운 국을 조심히 먹었다. 입천장이 한 번도 까지지 않았다. 후배의 직관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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