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스토리 - 음악으로 힐링
지금처럼 방학에 학원 투어를 하지 않던 시절.
동네 친구들과 미슬 학원에 갔다.
색채의 마술사 드가처럼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스케치북 보다 작은 스프링노트에 4B 연필로 선 긋기를 시켰다.
위에서 밑으로, 좌에서 우로.
좀 익숙해지니 2차원으로 진화.
동그라미, 네모, 세모.
가늘고 부드럽게, 굵고 힘 있게, 가늘다 굵어지게.
도형에 명암을 넣어 3차원으로 진화.
집집마다 거실에 서예작품 하나씩은 걸려있던 시절.
붓글씨 정도는 써야 하지 싶어 서예학원에 갔다.
사극 드라마에서 봤듯이 벼루에 먹부터 갈 줄 알았다.
원장님은 준비한 먹물을 벼루에 부어 주셨다.
괜히 먹 가는 게 시간 허비하지 말고 필요하면 부어 쓰라 하셨다.
누런 8절지 한 뭉터기를 주더니, 한 장을 펼쳐 먹물을 머금은 붓으로 'l'을 그었다.
비뚤 하지 않게, 굵기가 일정하게 그으란다.
며칠 동안 'l'을 열심히 그었다.
'ㅣ'만 긋는 게 지겹지 않냐면서, 'ㅡ'를 그어주셨다.
사선과 점찍기로 이어졌다.
Bill Evans의 Waltz for Debby를 들으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갈망했다.
정신없이 30대를 보내고, 40대가 되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겨 피아노 학원을 찾았다.
Bill Evans의 재즈악보를 기대했는데, 학원에 준비된 어린이 교본집을 주셨다.
다장조 동요부터 시작했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고 피아노 1대를 들였다.
매일 열심히 복습했다.
덕분에 어린이 교본집을 2달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수영은 발차기.
격투기는 원투.
보컬트레이닝은?
하얀 카펫 위에 우윳빛 그랜드 피아노 앞에 선생님이 앉아 계신다.
완전 개방이 가능한 통유리로 환한 햇살과 따스한 바람이 스튜디오를 채운다.
고개를 끄덕하자 선생님은 반주를 시작한다.
피아노 옆에 서서 노래를 시작한다.
"잠시만요. 가을에 실연을 당했는데 목소리가 밝은 것 같은데요? 조금 우울하게 갈 수 있을까요?"
머릿속으로 잠시 상황을 그려본다.
다시 감정을 잡아 노래를 시작한다.
"하하하. 너무 애절해요. 뒷부분에 다시 만나는 가사가 나오잖아요. 다시 만날 거란 희망도 살짝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갈 수 있겠죠?"
상상한 보컬 트레이닝은 이러했다.
실재로는 방음처리된 2평도 안 되는 방이 코인노래방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실용음악과를 준비하는 입시생들로 학원은 북적인다.
팝, 가요, 재즈, 뮤지컬. 방방마다 다양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수업보다 일찍 나와서 빈방에 들어가 목부터 풀어놔야 한다.
건반을 눌러가며 음정을 정확히 집으며 발성을 한다.
목이 어느 정도 풀리면 선생님과 정한 곡의 악보를 펼쳐 노래를 시작한다.
지난주 선생님이 설명하신 내용이 악보에 메모되어 있다.
노래는 목소리로 하는 연주다.
지난 시간 수업에 선생님의 반주를 녹음한 걸 틀어 연습을 해보지만 김연우처럼 불러지진 않는다.
수업시간이 되면 녹음부스가 갖춰진 방으로 간다.
인사를 꾸벅하면 선생님의 이론 강의가 있는 날도 있다.
성대의 구조, 소리를 내는 원리, 복식, 흉식.
이어서 발성.
도미솔미도에 맞춰 '아~아~아~아'를 반음씩 높여 진행한다.
소리가 작아요 힘 있게!
고음에서 음정이 떨어지면 안 되죠!
저음에서 왜 소리가 작아져요? 배에 힘 빼지 말고 소리 유지하세요!
'아' 다음은 미, 묘, 우, 이.
발성수업으로 몸의 기운이 다 빠질 때쯤 악보를 꺼낸다.
"연습해 오셨죠?"
수업은 일주일간 얼마나 충실하게 연습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번 곡은 김연우의 사랑한다는 흔한 말.
선생님이 악보를 보고 반주를 시작한다.
들어가는 박자를 놓친다.
"악보에 12 마디하고 들어가잖아요. 다시 할게요."
반주를 들으며 마디를 세는데, 중간에 헷갈려 또 박자를 놓쳤다.
"박자 연습도 해오세요."
드디어 박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