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앞 어둠 속에서, 내 절망들 그 자체를 보았다. 나는 더 이상 그것들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저울 양쪽에서 천천히 흔들렸고, 나는 그것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증오심 없이 지켜보았다. 그것들은 순수한 절망들이었다. 나는 내 마음에서 떨어져 나와, 그것들을 냉정히 바라보았다. “
”이제 나는 철저히 헐벗었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내팽개쳐졌다. 내게서 남은 것은 다 죽어버렸다. 아무것도 이리로 뚫고 들어오지도, 여기서 나가지도 못한다. 저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무서운 손이 회벽을, 메마른 회벽을 발라버렸다. 무덤은 비어 있었다. 보는 것이라고는 이 헐벗음밖에 없다. 내 정신 속에서는 극히 적은 움직임마저 그친 지 오래되었다. 내 정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 심장으로부터는, 규칙적인 피의 왕복뿐, 아무런 충격도 전해오지 않는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산다는 것에 대한 긍지라고는 없다. 심지어 내 헐벗음에 대한 애증조차 없다. 나는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다. 의심이나 신앙의 모습들은,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설령 내가 아직 그것들을 그려낼 수 있다 하더라도, 내게는 인위적인 것들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한때 세상을 사랑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제 아무런 구원이 없다. 불모의 세상이다. 나는 세상 그 이상을 사랑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무도 내게 대답하지 않았다. “
얼만 동안 일상의 루틴이 무너지는 것이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는 똑같이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 고맙고 감사하다. 눈 덮인 미지의 세계,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묘사. 인가가 드문 눈 덮인 벌판 그 속에서 이어지는 화자의 끝없는 기다림과 평행선을 이루는 나의 기대감. 몽상적이고 신비로움에 이끌려 끝까지 책을 읽었고, 반복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화자가 겪고 있는 암중모색가운데 변화가 시작된 것도 책의 이야기가 조금 더 선명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아생트를 찾아 나서는 핑계로 떠난 여행이었으니까.
내적인 충실함과 세심한 순수성만으로도 존재의 공허함이 만들어낸 환상을 충분히 채워주지 않을까!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