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디자이너가 꿈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든 과목 4, 5등급 정도로 성적이 낮아서 돈벌이를 잘 못할 거로 생각한 부모님의 반대로 그 길로 가지는 못했다. 나름대로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대외 활동 등 생활기록부 관리에도 소홀하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었지만 끔찍이 소질이 없었다. 결국 아버지의 권유로 낮은 성적 대비 쉽게 취업이 가능하고 안정적인 안경광학과를 택하게 됐다. 알아보니 안경원과 안과는 이력서만 내면 바로 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취업이 잘 된다고 했다. 이때 19살의 나는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한다는 것이 너무 비통했다.
20살, 지방대 안경광학과에 입학했는데 입학하고 2주 정도 지내보니 학과 친구들 대다수가 나보다 공부를 훨씬 더 못했다. 내가 원치 않는 과를 내 성적보다 낮게 왔다는 생각에 더 비통했던 나는 문득 여기서도 공부를 못하면 정말 인생 루저가 되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마음을 고쳐먹고 수업을 듣는데 웬걸 수업이 너무 재밌는 거다. 내가 고등학생 때 공부하는 내내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이거 배워서 나중에 어디에 써먹는 거야?’였다. 그때와는 다르게 대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잘만 배워놓으면 나중에 일할 때 바로 써먹는 지식이었기에 기본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명분이 달랐다. 그리고 어느 날 안구 해부학 과목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날 움직였다. “지금 대학교 1학년 때 너무 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학점을 망쳐놓으면 앞으로 3년 동안 회복하는 데만 힘써 지칠 거고, 지금 학점을 잘 받아놓으면 뿌듯함과 동시에 이 학점을 지키기 위해 계속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 겁니다.” 이 말이 나에겐 방아쇠가 되어 대학교 내내 열심히 공부하게 된 계기였다. 그 결과 매 학기 과탑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고 4.47학점(만점 4.5점/백분위 99.66점)으로 졸업했다.
이 말을 왜 했냐고? 바로 이 3년 동안 쌓아온 지식과 열심히 공부했던 과거가 나를 안경원에서 일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안경사로 일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하면서. 그리고 높은 성적은 높은 자존감을 형성하게 만들어 주었고 높은 업무 효율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사장님의 최애 직원이 되었고 3년 차에 팀장을 맡을 수 있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