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가끔 피부색이 다른 분들이 계신다. 단순 흑인, 백인, 황인과 같은 피부색이 아닌 건강이 좋지 않아 달라지는 피부색을 말한다. 예를 들어 술을 즐기시는 분 중 대부분은 붉은 피부색을 띤다. 그 양이 매일 막걸리 3~4병 정도로 과해지면 노란 피부를 보인다. 외과중환자실에 있다 보면 간이식 환자도 많이 보게 된다. 내가 봤던 대부분의 간이식 이유가 술로 인한 간경화였다. 그래서 붉은 혹은 노란 피부의 분들을 보게 되면 어떤 생활 습관을 지니고 계실지는 모르지만, 술만큼은 드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간이식 후 완전한 회복을 위한 과정이 너무 험난하고 힘겹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아픈 경우에도 직업병은 발생한다. 자신이 어디가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하냐, 무슨 검사를 받아야 하냐는 둥 다양한 질문을 받는다. 병원에서 일하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학생 때에는 나도 아는 게 없으니 잘 모르겠다, 나한테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은 내가 아는 게 많아지다 보니 최대한 알려주고 도와주고 싶게 되었다. 어떤 증상이 있을 때 어떤 검사를 해보는 게 좋은지, 어떤 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등을 추천해 주며 주변인들의 건강을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끼리 아는 언어라고 한다면 병원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의학용어가 그럴 것이다. 흔히 말하는 혈압, 열 등의 용어도 굳이 영어로 바꿔 BP(blood pressure, 혈압), fever 등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흔한 말들 외에 우리 병원에서만 쓰는 말들도 있다. 다른 곳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승압제로 저혈압 증상이 있는 환자의 혈압을 올리는 데 사용)이라고 부르는 약을 우린 병원 안에서 통용되는 코드명을 이용해 ‘네피’라고 부르며 데노간(해열제)을 PACT(피에이시티, 라고 부름)로 바꿔 이야기한다.
‘환타’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지금 여러분이 떠올린 그 음료 아니다.
‘환자를 탄다’는 말을 줄여서 부르는 단어로, 어느 한 명만 오면 조용하던 병동이 발칵 뒤집히는 것을 말한다. 내 동기 중에 ‘환타’로 유명한 동기가 있었는데, 분명 혈압 유지가 잘 되고 있던 환자였는데 그 친구가 출근해 환자를 보려는 순간 혈압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빠진 상황에 전번 간호사까지 퇴근이 늦어졌다. 우리 팀에 다른 ‘환타’인 선생님은 그 선생님이 일하는 시간이면 무조건 에크모를 시행했다. 환자에 의해 움직이고 바빠지는 간호사인 만큼 환자를 타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날이면 그날은 ‘물도, 밥도 못 먹겠구나’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 처음 살짝 이야기했는데, 그 음료와 이름이 같지 않은가? 다음날 근무가 있는 간호사들끼리 식당에 가서 밥을 먹게 되면 무조건 그 음료는 시키지 않는다. 나 때문에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지면 안 되니까. 물론 내가 바빠질까 싶어서는 절대 아니다!
약간은 무서운 은어도 하나 소개하자면 간호사들 사이에 존재하는 은어 중 ‘태움’이라는 용어가 있다.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은어인데, 병원 특성상 작은 실수가 환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여 사망까지 이를 수 있게 만들기에 분위기는 항상 살벌하다. 이런 가운데 별것도 아닌 일, 예를 들어 인사를 크게 안 한다든지 그냥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든지 등의 이유로 신규를 쥐잡듯 잡는 모습이 활활 타 잿가루로 만들어버리는 모습 같아 붙여진 은어다. 신규라고는 하지만 일단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일하기에 실수를 용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에서의 이유가 아닌 별것도 아닌 이유로 자살에 이르게 할 만큼 괴롭히는 건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추세이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병원은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듯 계속해서 함께 일함에 기쁨이 있는 방향으로 바뀌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