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그녀, 이나래-32화
성당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나래는 창밖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쏟아질 듯한 별들이 촘촘히 수놓여 있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홋카이도만의 밤하늘이었다.
은하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흘러가고, 별빛이 끝없이 펼쳐져 온 세상을 은빛 베일로 덮은 듯했다.
차창 밖은 적막했지만, 그 적막이 오히려 세상에 두 사람만 남은 듯한 신비로운 기분을 만들어주었다.
소에다는 운전석에 앉아 조용히 나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밥은 맛있었어? 여기 스테이크가 유명한데, 나래는 거의 먹지 않던데.”
나래는 레스토랑에서 받은 고백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선생님, 이런 고백을 받았는데 밥이 들어가겠어요?”
볼이 장밋빛으로 물든 나래가 소에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봐요.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던 그 순간부터... 가슴이 이렇게 뭉클했거든요.”
나래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소에다는 나래의 볼을 살짝 어루만지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나래는 처음으로 그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을 했다.
“나는 나래의 이런 솔직함이 좋아. 결정하기 힘들었을 텐데, 내 마음을 받아줘서 고마워.”
그가 천천히 나래의 어깨를 감쌌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었다.
그의 은은한 향기와 규칙적인 숨소리가 가득한 차 안에서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물들어 있었다.
‘정말 후카가와에 오길 잘했구나.’
나래는 소에다의 품속에서 속으로 생각했다.
세 달 전, 용기를 내어 홋카이도행 비행기에 올랐던 날이 떠올랐다.
하지만 따뜻한 감정의 물결 뒤에는 작은 불안이 조용히 따라왔다.
“선생님, 미나코 씨에게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나래의 목소리에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소에다도 잠시 표정이 굳어졌다.
“미나코 씨 말이지...”
그가 잠시 망설이며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미나코 씨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노인 복지원 부원장, 그리고 원장님 처제로만 생각했어.
한 번도 여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미나코 씨도 나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을 거야.”
나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병원에서, 복지원에서, 미나코가 소에다를 바라보는 그 특별한 눈빛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제가 직접 말씀드릴게요. 제가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소에다는 나래의 손을 더 따뜻하게 감쌌다.
“걱정하지 마. 미나코 씨는 이미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리고 미나코 씨는 나래를 정말 많이 아끼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하지만 나래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무거운 돌덩이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미나코는 나래가 홋카이도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하나였다.
노인 복지원 부원장으로 일하며, 때로는 언니처럼, 때로는 든든한 조언자처럼 나래의 곁을 지켜준 사람이었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당차며 따뜻했고,
아츠코와 함께 나래를 집으로 초대해 밤늦도록 웃고 떠들 수 있는 고마운 인연이었다.
“나래야, 여기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 내가 도와줄게.”
그때 미나코가 해준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래가 후카가와에서 받은 많은 사랑 중에서도 미나코의 따뜻함은 특별했다.
낯선 땅에서 외로워할 때마다 먼저 다가와 주었고, 힘들 때마다 격려해 주었다.
일본어가 서툴렀을 때도 나래의 발음을 고쳐주거나 상황에 맞는 표현을 알려주었다.
가끔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에는 미나코의 집에 들러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미나코와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소에다와 사귀는 것을 망설였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이 사랑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소중한 인연에 금이 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 소에다에게 받은 고백은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래도 이미 그를 너무 깊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좋아하고 있었다.
나래는 결심했다.
‘미나코 씨를 만나서 진실을 말하자. 정직하게, 진심을 다해서.
그래야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거야.’
지금만큼은,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누리고 싶었다.
나래는 소에다의 얼굴을 바라봤다.
달빛이 그의 옆얼굴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나래를 조용히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 깍지를 꼈다.
“나래야.”
“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수도 있어. 서로 국적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언어의 벽도 있고, 복잡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 그래도 나를 믿어주고 함께해 줄 수 있어?”
소에다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과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나래는 소에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 속에서 자신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 저는 괜찮아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선생님과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래는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는 두려움보다는 희망이, 불안보다는 설렘이, 의심보다는 확신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사실… 처음 홋카이도에 왔을 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모든 게 낯설고, 혼자서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힘들 때마다 선생님이 제 옆에 계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두렵지 않아요.”
나래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눈을 들어 소에다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이제 막 시작된 연인의 확신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래는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여전히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북극성이 유독 밝게 빛나며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카가와의 여름밤이 두 사람의 새로운 이야기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소에다가 나래의 어깨를 살짝 당겨 자신에게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나래야, 고마워. 용기를 내어 내 마음을 받아줘서.”
“선생님이야말로... 저한테 항상 먼저 다가와 주셔서 감사해요.”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포옹했다. 이번엔 더욱 깊고 따뜻한 포옹이었다.
별빛 아래에서 시작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이제 막 첫 페이지를 열었다.
작가의 말:
후카가와의 언덕 위에는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제게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성당 옆에는 레스토랑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결혼식도 자주 열렸습니다.
어느 주말, 우연히 들른 자리에서 성스러운 결혼식을 마주한 적이 있는데,
그 순간 ‘이런 곳에서 결혼을 한다면 절대 이혼 같은 건 있어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 레스토랑의 지배인님과도 인연이 닿아 특별한 친분이 생겼고,
덕분에 더 좋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소중한 장소를 제 소설 속에 담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추억을 장소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