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40
소에다는 비디오 테이프를 움켜쥐었다.
북한에서 직접 촬영한 테이프를 비디오 플레이어에 넣자, 테이프가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찌지직——"
오래된 영상 특유의 노이즈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화면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다가,
어둑한 조명 아래 북한의 김일성 동상이 나타났다. 바람에 나부끼는 빨간 깃발들. 행인 없는 거리. 차분한 정적.
소파의 푹신한 쿠션이 나래의 체중을 품어안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영상 속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소에다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그 순간, 와인 특유의 달콤쌉싸름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소에다가 진한 루비색 와인을 잔에 담아 나래 옆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은 자리와 나래 사이의 거리는 겨우 숨 한 번 들이마실 공간뿐이었다.
그의 체온이 나래의 왼쪽 팔에 닿았다. 소에다에게서는 샌달우드 향수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나래의 심장은 도망치고 싶을 만큼 빠르게 뛰었다.
소에다의 팔이 마치 오래된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나래의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감겨들었다.
소에다는 나래의 옆모습을 조용히 응시했다.
화면 속 거친 풍경이 아닌, 은은한 램프빛에 반사된 나래의 눈동자에 그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풀 냄새, 그리고 그녀의 작은 콧날이 영상의 푸른빛에 물들어 있었다.
입술은 살짝 벌어져 촉촉하게 빛났고, 속눈썹은 화면의 변화에 따라 작게 떨렸다.
소에다는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깨질까 두려워 유리공예품을 대하듯,
그녀의 마음에 균열이 생길까 숨소리조차 조절했다.
나래는 자세를 고쳐 앉고 싶었다. 다리가 저리고 왼쪽 엉덩이가 쿠션에 눌려 따끔거렸다.
하지만 어깨 위로 느껴지는 그의 손길은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벼우면서도, 산처럼 무거웠다.
심장은 귓가에서 쿵쾅거리는데, 온몸은 얼어붙은 듯 미동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맨발 발가락만이 카펫 위에서 작게 꼼지락거렸다.
"나래는 북한에 못 가지?"
침묵을 깨고 소에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
테이블 위의 치즈를 오물거리던 나래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ㅎㅎ 당연하죠! 한국 사람이 북한에 가면 월북이죠. 간첩이라고 오해받겠죠?
근데 재일교포 중에 북한 국적 가진 사람은 갈 수 있대요."
그의 얼굴이 문득 훌쩍 가까워졌다.
'소에다는 연한 쌍꺼풀이 있는 눈이었구나…'
지금껏 미처 몰랐던 그의 얼굴 세세한 부분이 나래의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소에다는 와인잔을 입술로 가져갔다. 유리잔의 차가운 감촉이 그의 입술에 닿았고, 진한 루비색 액체가 천천히 기울어졌다. 그의 목울대가 오르내리며 와인을 삼키는 모습에 나래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나래는 자신도 모르게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나는 북한에 두 번, 한국은 한 번 가봤어. 다음엔 기회가 된다면..."
소에다의 목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진동시켰다. 낮고 부드러운 음색이 나래의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래랑 함께 한국에 가고 싶다."
마지막 말은 마치 비밀을 나누듯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 음성에 담긴 특별한 울림이 나래의 가슴 깊은 곳까지 파문을 일으켰다.
소에다의 손가락이 나래의 어깨에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렸다.
그의 손끝이 나래의 팔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그녀의 피부는 한 겹씩 벗겨지는 듯한 감각에 예민해졌다.
마침내 그의 손은 테이블 위에 놓인 나래의 손을 덮었다.
나래의 차가운 손가락들. 소에다의 따뜻한 손바닥. 그 온도차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전율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 같은 생각이 스쳐갔다.
'우리는 이제 정말 연인이 되었구나.'
와인의 기운이 오른 탓일까, 소에다의 얼굴은 와인빛처럼 붉게 물들었다.
나래가 먼저 용기를 내어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살며시 감쌌다.
그 따뜻한 손길 위로, 소에다의 길고 가느다란 손이 포개어졌다.
이제 나래는 더 이상 자신의 마음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나는 네가 정말 좋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어..."
소에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순간, 소에다는 나래의 얼굴을 양손으로 조심스레 감싸며 또렷하게 말했다.
"네가 정말 좋아."
그의 손이 나래의 얼굴을 부드럽게 당겼고, 마침내 그의 입술이 나래의 입술에 닿았다.
첫 키스.
세상의 모든 시계가 멈춘 듯했다.
소에다의 얼굴이 다가오는 그 찰나, 나래는 그의 속눈썹이 떨리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손끝이 나래의 귀 뒤편 연약한 피부를 스치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짜릿함이 나래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나래는 두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떨리는 그녀의 모습에 소에다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소에다는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없어졌다.
나래의 도톰하고 말랑한 입술이 소에다의 얇고 단단한 입술에 닿았다.
부드러운 감촉. 미세한 떨림. 숨 쉬는 소리. 심장 소리.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체온이 만나 새로운 온도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가볍게,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시작된 입술의 접촉이 점점 깊어졌다.
소에다의 입술에서는 와인의 쌉싸름한 여운이 느껴졌다.
나래는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감각의 홍수 속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 노래하는 듯했다.
'이런 감각이... 키스구나...'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본능적으로 흘러갔다. 그녀의 심장은 가슴을 뚫고 나올 듯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소에다는 아주 천천히, 마치 시간의 흐름을 붙잡아두려는 듯 입술을 떼었다.
둘 사이에 생겨난 작은 공간으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나래의 입술은 마치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소에다의 숨결에서는 와인의 탄닌 향과 그만의 고유한 체취가 섞인 향기가 느껴졌다.
소에다의 두 팔이 나래의 등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녀는 소에다의 품 안에서 자신의 심장이 마치 새장을 부수고 나오려는 새처럼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 심장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나래는 소에다의 가슴에 귀를 가만히 대었다.
그의 심장도 똑같은 리듬으로 뛰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순간이 아니었다.
이것은 감각의 폭풍이었다.
이것은 기억의 각인이었다.
두 사람의 감각이 하나로 엮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시간이란 개념은 흐릿해졌다.
남은 것은 오직 그 순간의 감각뿐이었다.
작가의 말:
말랑말랑한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재미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내가 하고 싶은 멜로나 로맨스를 마음껏 펼쳐낼 수 있다는 것.
오늘 글을 쓰면서 제 마음도 한없이 몽글몽글해졌습니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이런 따뜻한 감정이 더 잘 어울리는 계절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