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회오리, 그리고 솔직한 고백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45화

by 파랑몽상

☕ 이번 화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천천히 읽어주세요.

마음의 온도가 조금씩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구시로 여행이 끝난 뒤, 나래는 미나코에게 소에다와의 연애 사실을 솔직히 고백한다.

후카가와의 카페 창가,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피어나는 두 여성의 진심 어린 대화.

마리모 열쇠고리와 커피잔 위에 스며드는 햇살처럼, 이해와 우정이 잔잔히 번져간다.


구시로 여행 후, 그리운 마음의 재회

구시로 여행의 감정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트레킹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건, 함께 간 학과 친구들이 보여준 진심 어린 마음이었다.

홋카이도에서 유학하며 향수병에 시달릴까 걱정했지만, 괜한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날 밤, 소에다는 근무를 마치고 나래의 집을 찾았다.

수술 두 건을 연속으로 집도하고 온 터라 피곤했지만, 나래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소에다는 이틀이나 못 본 나래를 보자마자 꼭 안고,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를 올려다보는 나래 얼굴이 그리웠어. 여행은 잘 다녀왔어? 피곤하진 않았어? 얼굴이 조금 탄 것 같기도 하고."

소에다는 나래의 손을 잡고 노란 소파에 함께 앉았다.

"선생님... 제 손 좀 놔주시겠어요? 아이스커피 타 놨어요."

그제야 소에다는 "아, 그런가?" 하며 멋쩍게 손을 놓았다.


사랑의 진심,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제가 보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어요? 그리고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손도 잡고! 많이 뻔뻔해지셨네요?"

나래가 장난스럽게 웃자, 소에다도 장단을 맞췄다.

"그럼! 이제 우리 사귀는 사이잖아. 그러니까 보고 싶다 말할 수도 있고, 손도 잡을 수 있는 사이 맞지?"

소에다는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이렇게 손 잡고 싶어서,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는지 궁금하네요."

나래는 커피를 내놓으며 짓궂게 말했다.

"나래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그럼 내 옆에 앉아줘."

소에다의 장난기 어린 말에, 나래는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아 머리를 기대었다.

소에다는 나래의 머리에 손을 올려,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샴푸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푸릇한, 여름의 향기였다.


진실을 고백하기로 한 용기

"선생님. 저 내일 미나코짱 만나기로 했어요. 선생님과 사귄다고 말하려고요.

되도록이면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소에다는 어깨에 기대어 말하는 나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응, 그렇게 해. 나는 괜찮아. 이렇게 너랑 둘이 있으니까... 진짜 연애하는 기분이 든다."

그는 나래의 방을 감도는 라벤더 향을 깊이 들이마셨다.

나래는 그의 목덜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에 마음이 느긋해졌다.

곧 가을이 올 것이다. 둘이서 맞이하는 세 번째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미나코와의 만남, 커피숍에서의 진실

일본의 커피숍은 나래의 눈엔 언제나 신기하게 보였다.

밖에서 보면 허름해 보이는 곳도, 막상 들어서면 깔끔하고 세련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특히 홋카이도의 카페들은 그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은 예술품 같았다.

후카가와 역 근처의 '키사텐 하루'도 그랬다.

천장에는 오래된 구리 커피 그라인더들이 장식품처럼 걸려 있었다.

살짝 노랗게 변색된 옛 사진들 속에는 젊은 시절의 주인 부부와 홋카이도의 옛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가게 앞에는 페튜니아, 블랙잭 팬지 같은 꽃들이 환한 색으로 경쟁하듯 피어 있었다.

"딸랑딸랑."

문을 열자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나코는 먼저 와 있었다. 병원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있는 걸 보니, 점심시간을 이용해 나온 모양이었다.

옅은 핑크빛 조끼와 핑크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여기야, 나래!"

미나코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먼저 와 있었구나? 미안."

"아니야.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싶어서 먼저 왔어. 구시로 여행은 어땠어?"

나래는 가방에서 조심스레 꺼낸 마리모 열쇠고리를 내밀었다.

"별건 아니지만… 미나코짱이 생각나서."

"어머나! 너무 귀엽다. 고마워. 내 것까지 챙겨주다니."

미나코는 마리모 열쇠고리를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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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고백의 순간, 미나코의 성숙한 대응

나래는 아이스 초코를 시켰다.

홋카이도의 유제품은 맛있고 진하기로 유명했다. 어느 가게든 아이스 초코의 깊은 맛은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었다.

"미나코짱, 사실 오늘은 고백할 게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

나래는 빨대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꺼냈다.

미나코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동그랗게 눈을 뜬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뜸을 들여? 걱정하지 말고 무슨 말이든 해봐."

나래는 아이스 초코에 들어 있는 얼음을 빨대로 한 바퀴 휙 휘저었다.

얼음이 빙글빙글 돌면서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초코가루와 함께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마치 나래의 마음과 같았다.

깊이 숨을 들이켠 나래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 소에다 선생님과 사귀기로 했어. 정말 미안해. 미나코짱이 선생님 좋아한다는 거 아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렸어…"

미나코는 천천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우아함은 잃지 않았다.

"나래. 내가 그렇게 눈치 없을 줄 알아? 나는 이미 선생님한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잖아. 그리고 선생님이 너를 바라볼 땐… 뭐랄까... 눈빛이 전혀 달라. 무언가 소중한 걸 아끼듯 지켜보는 그런 눈빛. 그게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눈이라는 걸 느꼈지. 그래서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어. 전혀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사람의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미나코는 커피잔을 다시 들었다. 어른이었다.

나래보다 훨씬 더 성숙한 어른. 스물두 살에 이혼을 겪고, 그 아픔을 온전히 견뎌낸 사람의 눈빛이었다

"고마워..."

나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단순한 감사가 아니었다. 미나코의 양보에 대한, 그녀의 성숙함에 대한, 그리고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이해해 준 우정에 대한 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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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미래를 향한 응원

"나래. 소에다의 연애 상대가 너라서 오히려 기뻐. 너처럼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 옆에 있어주는 게 선생님에겐 잘 어울려."

미나코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선생님도 나름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고 들었어. 도쿄에 있을 때 힘든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상세한 건 모르지만, 깊은 상처를 받은 건 분명해."

미나코는 나래의 손을 살짝 잡았다.

"잘 보살펴줘.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리고... 혹시 힘들 때는 나한테 와. 나래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도와줄께."

미나코는 병원으로 돌아갔다.

나래는 컵에 남은 얼음을 다시 휘저었다.

초코는 이제 거의 녹아 연한 갈색 물이 되어 있었다. 잔에 맺힌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나래는 손으로 조용히 닦아냈다.

'어떤 과거든 이렇게 탁, 털어내면 되는 거지. 그리고 앞으로 함께 쌓아갈 추억들이 더 중요한 거야.'

창가에 앉아 있던 노부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발의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조심스레 그녀의 팔꿈치를 잡아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한 사람들의 움직임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이 있었다.

나래는 문득 자신과 소에다의 미래를 상상했다. 사랑은 시작이 아름다운 것보다, 끝이 아름다운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를 나서는 길, 나래는 구시로에서 소에다를 위해 특별히 산 선물을 떠올렸다.

가방 속에는 은은한 푸른빛의 마리모 유리 페이퍼웨이트가 있었다.

굴곡 없이 완벽한 구형으로 자라나는 마리모처럼, 그들의 사랑도 그렇게 단단하고 순수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작가의 말

후카가와시는 제가 유학했던 도시입니다.

제가 유학하던 시절엔 상점가도 제법 활기 있었는데, 8년 전 다시 찾았을 땐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더 조용해졌겠지요.

언제 다시 가게 될지 모르지만… 가끔은 가슴 시리도록 그립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저처럼, 마음 한편이 저릿해지는 그리운 장소가 있나요?

이번 화에서는 나래와 소에다의 관계가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미나코와의 삼각관계가 아름답게 정리되는 흐름을 담아보았습니다. 구시로 여행 후의 감정선, 일본 카페의 정취, 그리고 마리모처럼 둥글고 단단한 관계의 의미까지...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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