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 밤, 아직 남아 있는 이름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58화

by 파랑몽상

모든 실수는 술로 시작되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그날의 영광이 모두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래는 신에게조차 들키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소에다에게 들켜버렸다.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시작된 뒤풀이

시로키야에 6시 30분까지 모두 모였다.

미나코와 소에다는 병원 진료를 마무리하고 와서 7시에 합류했다.

나래의 옆자리는 이미 마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소에다 선생님, 나래 옆자리로 앉으셔야죠!"

제미 친구들이 놀리듯 말했고,
소에다는 주뼛거리며 나래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래는 그의 어깨가 자신과 닿는 순간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먼저 이렇게 우리 제미의 뒤풀이에 합류해 주신 소에다 씨와 미나코 씨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부침개 장사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나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노시타 교수의 말에 나래의 볼이 붉어졌다.

"나래! 오늘 정말 수고했어. 너의 리더십이 특별히 빛을 발하더구나.

그러니 오늘은 마음껏 즐겨. 우리 제미 모두들 너무나 수고했어!"

교수의 말이 끝나자 모두 앞에 있던 잔을 들어 '건배!'를 외쳤다.

나래 또한 3일간의 긴장이 한순간에 풀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목청을 높여 '건배'를 외쳤다.

그러나 소에다는 들뜬 나래가 걱정되어 염려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소에다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미나코였다.


복잡한 마음들

미나코는 나래와 소에다가 사귀는 것을 알고 있고
둘의 사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5년간 마음속으로 짝사랑했던 사람을
한순간에 떠나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천천히 마음속에서 떠나보내기로 선택한 미나코였지만,

소에다가 나래를 애처롭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편이 저렸다.

'저렇게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을...

언젠가 나도 받아볼 수 있을까?'

미나코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맥주잔을 입에 댔다.


나래의 변화

나래는 이미 흥에 차올라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제미 모두가 나래에게 "네 덕분이야"라는 말을 건넸다.

그것이 진심이든 장난이든, 아니면 거짓이든
나래의 귀에는 다 진실로만 들렸다.

사람들이 주는 축하주를 한두 잔씩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원래 술이 약한 나래를 소에다는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나래 옆자리에 앉은 마사 역시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취한 나래의 모습도,
흥분한 나래의 모습도
마사는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래, 천천히 마셔. 술도 약하면서..."

소에다는 나래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그의 따뜻한 손길에 나래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생님! 걱정 마세요. 사실 저희 아빠가 완전 술을 잘 마시는데...

제가 아빠 피가 한번 돌면 엄청 잘 마셔요. 오늘이 그날인 것 같아요. 아주 술이 쭉쭉 잘 받아요!"

나래는 헤벌쭉 웃으며 손에 있던 맥주를 다시 원샷했다.

마사도 나래가 걱정되어 말했다.

"나래, 그래도 남자친구가 걱정되어서 그러니까 천천히 마셔."

"오~ 마사! 오늘 여장 진짜 예쁘더라. 여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라니까! 넌 역시 나의 제일 좋은 동생이야!"

은근히 술이 오른 나래는 마사를 꽉 안았다.

소에다는 나래의 그런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평소와 다른 나래의 모습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미나코는 얼굴을 찌푸린 소에다가 눈에 들어왔다.

"소에다 선생님, 너무 그렇게 싫어하지 마세요. 오늘 나래가 애쓴 것은 사실이니까 조금 즐기게 놔두는 것도 좋지 않겠어요?"

미나코의 말에 소에다는 얼굴의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마음속 걱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통제를 잃어가는 나래

나래는 취해 있었다.

행동이 커지고 목소리도 커지고 웃음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오늘은 취해도 잠이 오는 것이 아니라
점점 과하게 행동하는 것을 자신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만둘 자제력이 자신 안에서 이미 소실되어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마사도 너무나 좋아 보였고,
소에다에게도 과하게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래도 알 수 있었다.

술의 위력으로 나래는 자신이 점점 사라지고
술이 나래를 먹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브런치 이미지 58화.png

뒤풀이의 끝

술자리는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래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 있었다.

소에다는 나래를 안았다.

나래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을
어떻게든 들어 올리려 했지만
눈은 자꾸만 감겼다.

"나래, 그냥 조금 기대서 자."

소에다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나래는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지금 자면 안 되죠. 다들 2차 안 가나요?"

나래는 가라오케를 가자고 목소리를 냈다.

"나래! 그렇게 취해서 가라오케는 무리야. 얼른 남자친구랑 집에 들어가."

슌스케는 비틀거리는 나래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선생님, 얼른 나래 데리고 집에 가세요. 나래도 이렇게 술에 취하는구나."

하며 소에다에게 나래를 맡겼다.

"아! 이런, 나 더 마실 수 있어!"

나래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면서도 계속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차가워진 분위기

비틀거리는 나래를
소에다는 부축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미나코는 소에다에게 잘 가라는 인사도 할 수가 없었다.

소에다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고,
나래를 바라보는 눈 또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소에다의 차에 오른 나래는
갑자기 몰려오는 한기에 부들부들 떨었다.

"선생님, 너무나 추워요."

소에다는 나래의 말에 차의 온도를 높였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셔? 맥주 한 잔에 취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마실 수 있는 거지?"

소에다는 옆자리에 앉아서 고꾸라져 있는 나래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섞여 있었다.

"저요? 사실 잘 마시는데... 자제를 하는데... 오늘은 제가 너무나 기분이 좋았나 봐요.

미안해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자제가 안 되는지... 진짜 정말 너무나 죄송해요."

나래는 발음도 제대로 안 되는 일본어로
소에다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소에다는 그런 나래를
연민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괜찮다고 하면서 이 아이는 분명 외로웠던 거구나. 그리고 그게 오늘 터진 거야.'

소에다는 그런 나래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나의 소에다 품은 항상 이렇게 따뜻해..."

나래는 소에다에게 응석을 부렸다.


예상치 못한 전화

그 순간, 나래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에 찍힌 번호는 국제전화 발신이었다.

"여보세요?"

나래는 한국어로 전화를 받았다.

"준철 오빠가 웬일이야?"

또 그 이름이 나래의 입에서 나왔다.

소에다의 가슴에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따뜻했던 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소에다는 나래가 전화를 받는 동안 앞을 응시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후카가와의 밤거리는
어둡고 고요했다.

그 고요함이 지금 소에다의 마음속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나래의 목소리는 한국어로 계속 이어졌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톤만으로도 소에다는 알 수 있었다.

나래가 지금 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 앞에서와는 다른, 무언가 풀어진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전화가 끝나고 나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선생님..."

나래가 소에다를 불렀지만,

소에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화났어요?"

나래의 물음에도
소에다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나래에게는
어떤 말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술기운에 흐릿했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뭔가 잘못했구나.'

나래는 그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작가의 말

저의 주량은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이 전부예요.
더 마시고 싶어도, 꼭 나래처럼 몸이 먼저 사인을 주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술로 큰 실수를 했던 기억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나래처럼,
순간 마음의 단단한 빗장이 풀려버리는 경험…
혹시 여러분은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 짜릿한 순간.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을 나래의 마음—
어쩌면 “나 오늘 너무 잘했어!” 하고 외치고 싶었겠죠.

하지만 기쁨이 지나치면 방심이 되고,
방심은 늘 가장 조용한 틈에서 실수를 불러오죠.

여러분의 주량은 어느 정도인가요?
혹시 술 한 잔에 얽힌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면
살짝 들려주세요.
댓글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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