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균열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59

by 파랑몽상

흔들리지 않던 마음... 흔들리다....

흔들리지 않던 마음이 흔들렸다.

나래는 후카가와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참 고마웠다.
낯선 땅이었지만, 이제는 그녀를 웃게 해주는 친구들이 있고, 일본어도 원어민처럼 능숙해졌다.
무엇보다도—
지금 나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소에다가 옆에 있다.

그런데 그 평온함을 단숨에 흔들어버린 이름 하나.
오래전 마음속 어디엔가 묻어두었다고 믿었던 조각.
손대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지만, 문득 떠오르면 가슴을 찌르는 이름.

준철.

첫사랑은 참 오래간다.
수십 번은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끝나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
작은 바람에도 다시 불붙는 불씨처럼.

나래는 소에다를 사랑한다.
그 사랑을 의심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축제 뒤풀이 자리에서 걸려온 준철의 전화 한 통은,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마음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

“응… 나도 그래. 가끔은 오빠 얼굴 생각나고… 보고 싶어.”

술기운에 흐릿한 말투였지만,
그 말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못난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에다의 침묵

소에다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래의 얼굴에 떠오른 그 감정이
‘옛사랑을 놓지 못한 여자’의 표정이라는 걸.

후라노 여행에서도 나래는 말했었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있었다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고.

하지만 오늘,
나래는 다시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분명한 흔들림이 있었다.

‘왜… 아직도 마음이 남아 있는 거지?’

소에다는 차갑게 스며드는 겨울밤을 묵묵히 견딜 뿐이었다.


통화가 끝난 후

나래는 창문을 조금 내렸다.
울렁거림이 가라앉지 않았다.
평소엔 좋아하던 소에다의 은은한 오크 향조차 오늘따라 부담스러웠다.

‘선생님… 내가 한 말… 알아들으셨을까?’

소에다의 옆얼굴은 굳어 있었다.
침묵 속에서 건드릴 수 없는 벽이 느껴졌다.


소에다의 차가운 한마디

“나래, 오늘은 그냥 집에 들어가.”

목소리는 어딘가 암상스러울 만큼 차가웠다.
평소의 따뜻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나래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톤이었다.

비틀비틀 걷는 자신을 집까지 데려다 줄 줄 알았던 기대가
한순간에 꺼져버렸다.

“선생님… 아까 한국에서 온 전화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좋아했던 선배였다고. 그냥 제 짝사랑…
오빠가 술 취해서 전화한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나래는 벽을 짚으며 간신히 변명했다.

하지만 소에다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단순히 선후배 사이면… 그렇게 보고 싶다고 말하나?
그게 한국의 정서야?”

그 말에 나래의 몸에서 알코올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심장이 얼어붙는 기분.


두 사람의 첫 갈등

“나래… 너 지금 너무 취했어.
나는 이런 상태의 너와는 대화하고 싶지 않아. 오늘은 그냥 들어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래는 차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쾅.’
작은 골목이 울릴 정도의 소리.

소에다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차를 출발시키고, 하얀 배기가스만 남긴 채 멀어져 갔다.

나래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혹시라도 소에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 어리석은 기대 하나로.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남겨진 건,
겨울밤의 차가운 공기와
둘 사이에 생긴 첫 번째 균열뿐이었다.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브런치 58화 이미지.png


작가의 말

저의 첫사랑은… 솔직히 말하면 나쁜 남자였습니다.
술 좋아하고, 게임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했죠.

그런데도 제가 4년 동안 그 사람을 짝사랑했고,
사귀고 나서는 “괜찮겠지” 하며 계속 용서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정말 갑작스럽게
임계점이 오고,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아…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나는 너무 힘들겠다.’
계산처럼, 아주 또렷하게.

그래서 결국 이별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오래 지나서야 인정하게 된 사실이 하나 있어요.

소설은 픽션이지만…
제가 살아온 마음의 조각들이 여러 장면 속에 숨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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