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사랑이, 아침에도 계속되었다.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63

by 파랑몽상

사랑 고백 후 처음 같이 맞이하는 아침.
후카가와의 찬 공기 속에서, 나래와 소에다는 서로의 온기로 계절을 견딘다.


처음 맞는 아침

아침 7시,

소에다는 나래의 고른 숨소리에 조심스럽게 잠에서 깼다.

지난 밤늦게까지 서로의 품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나래는 소에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새우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마치 그의 체온이 없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

소에다는 숨을 죽인 채 나래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잠에 취한 그녀의 얼굴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작은 숨소리마저도 그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말 꿈이 아니었구나. 나래가… 내 품에 있구나.’

창밖으로는 10월 중순의 다이세츠잔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발 2,291미터의 아사히다케를 주봉으로 한 그 연봉은 사계절 내내 눈을 이고 서 있지만,
이맘때면 능선 아래까지 서리가 내려앉는다.
산기슭의 단풍은 절정을 지나 색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했고,
후카가와 시내의 나무들도 낙엽을 떨구며 겨울 채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짧았던 홋카이도의 여름과 가을을, 소에다는 나래와 함께 건너왔다.
그리고 이제, 둘이 함께 맞는 첫 번째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에다는 어젯밤의 기억이 물결처럼 되살아났다.
나래의 고백, 떨리던 목소리,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마음들.
그 모든 순간이 선명했다.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꿈만 같았다.


어젯밤의 문 앞

나래는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늦게,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소에다는 말없이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그의 셔츠에는 위스키 한 잔을 기울인 후의 은은한 향이 배어 있었다.
나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이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며 얼마나 긴장했을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소에다가 나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입술을 맞췄을 때,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입맞춤은 점점 깊어졌고, 나래는 그의 품에 조심스럽게 몸을 기댔다.
소에다의 손길이 그녀의 어깨를 따라 천천히 내려왔을 때,
나래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선생님…”

나래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사실… 처음이에요.”

소에다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놀라지도 않았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나래.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아도 돼.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고… 나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어.”

나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소에다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고, 솔직했다.

소에다는 자신의 품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그녀를 더 세게 안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정말로 부서지고 말 것만 같아서.

그저 말없이 곁에 함께 있어주었다.

그 밤은 열정보다, 서로를 향한 존중과 기다림으로 채워졌다.
사랑은 때로, 침묵의 형태로도 충분했다.


함께 맞이하는 새벽

소에다는 나래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침대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에도 나래는 눈을 살짝 떴다.

“음… 벌써 일어나셨어요?”

나래는 잠결에 손을 뻗어 소에다를 더듬었다.
그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가 금세 허전해졌다.

“미안, 깨웠구나.”

소에다가 다시 나래 곁으로 돌아와 누웠다.

“조금만 더…”

나래는 소에다의 팔을 잡아당겨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팔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베개가 되었다.

“저는 선생님 냄새가 좋아요.
따뜻해서… 안심이 돼요.”

나래는 소에다의 가슴께로 코를 가져다 댔다.
규칙적이고 든든한 심장 소리가 귀에 닿았다.
이 리듬이 계속되기만을, 나래는 막연히 바랐다.

“일곱 시 조금 넘었어. 조금 더 자도 돼. 내가 깨워줄게.”

소에다는 나래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나래는 그의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다시 잠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누군가와 아침을 함께 맞이한다는 것.
그것은 소에다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약혼자와 동거하던 시절,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같이 아침에 눈을 뜨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옆에서 들리는 숨소리,
함께 마시는 첫 커피,
서로의 하루 일정을 확인하는 소소한 대화들까지.

그녀가 떠난 이후로는
다시는 이런 아침을 맞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또다시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래가 있다.


다이세츠잔 아래의 식탁

소에다는 익숙한 손길로 야채를 손질하고,
낫토를 꺼내 김치와 함께 버무렸다.

계란을 삶고, 샐러드를 준비했다.
나래를 깨워 함께 아침을 먹을 생각에
서른셋의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 나이에 이런 설렘이 다시 찾아온다는 게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고맙고, 많이 기뻤다.

캐러멜 향이 은은한 커피를 내려
창가로 가져가 조용히 한 모금 마셨다.

저 멀리 보이는 다이세츠잔은 여전히 눈으로 덮여 있었다.
계절을 한 발 앞서 살아가는 존재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창밖의 공기는 겨울을 예고하듯 차가웠고,
그 위로 얇은 햇살이 조심스레 내려앉아
추위를 살짝 달래주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던 소에다는
문득 현실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행복한 순간일수록, 이상하게 불안은 더 선명해졌다.

‘나는 서른셋, 나래는 스물하나. 12살 차이…’

‘나래 부모님이 일본인인 나를 받아주실까?’

‘우리 부모님은 또 어떨까.
한국 사람에다, 이렇게 어린 나래를…’

커피잔을 든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하지만 침실에서 들려오는 나래의 고른 숨소리를 떠올리며,
소에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한다.
이번에는 끝까지 지킬 거야…’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나이도, 국적도, 타인의 시선도—
그 어떤 것도 이 확신을 흔들 수 없었다.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브런치 63화 이미지.png

작가의 말

소설을 쓰고 있는데 창밖으로 첫눈이 내렸습니다.
쏟아지는 하얀 눈을 바라보니 자연스레 창가로 걸어가게 되더라고요.
문을 열고 손을 뻗어 눈을 받아 보았습니다.

차갑게 스며드는 그 감촉이,
오래전 홋카이도 후카가와에서 보내던 스물한 살의 겨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후카가와는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리는 도시입니다..
아침에 눈을 털며 등굣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지금 정말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선명하게 들었죠.
그때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지,
오늘 이 첫눈을 보며 다시 스물한 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래를 쓸 때마다,
저의 20대가 조금씩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의 설렘과 외로움, 미숙함과 용기…
그 감정들 덕분에 지금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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