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그녀, 이나래-64화
소에다의 집에서 맞이한 아침. 그의 온기 속에서 마음이 천천히 봄처럼 피어나는 나래. 하지만 예상치 못한 미나코와의 마주침은 또 다른 파문을 일으킨다…
나래는 어제 입고 왔던 옷 그대로,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밤새 소에다와 대화를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소에다의 구스 이불속은 마치 작은 천국 같았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남아 있는 그의 체온과 베개에 스민 향기가 나래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소에다와 함께할 수 있다면…'
나래는 이불을 코끝까지 당겨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지만, 나래는 조금이라도 더 이 순간을 붙잡고 싶어 이불속에 다시 몸을 파묻었다.
"어? 나래가 어디 갔을까?"
소에다는 장난스럽게 이불속으로 들어와 나래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그의 팔이 닿는 순간, 짜릿한 몸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선생님… 오늘 하루만 같이 있으면 안 돼요?"
대답 대신, 소에다는 그녀를 품에 안고 천천히 일으켰다.
"오늘은 진료도 많고 회의도 있고… 나래도 오늘 전공 수업이 있는 날이잖아.
대신 토요일에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는 건 어때? 같이 영화도 보고 밀린 얘기도 실컷 하자."
나래는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진짜죠? 저 아르바이트 끝나고 선생님 집으로 바로 와도 되는 거죠?"
나래는 이 모든 장면,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탁 앞에 앉은 나래는 눈을 크게 떴다.
완벽한 반숙 달걀과 윤기 흐르는 낫토, 따뜻한 커피까지—누군가 자신을 위해 정성을 들여 차려 놓은 아침밥을 먹어본 게 얼마 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향이 이렇게 좋은 거였어요?"
나래는 커피잔을 들어 코 가까이 가져가 향기를 음미했다.
"매일 이렇게 만들어줄 수도 있어."
나래는 커피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그럼 저… 정말 여기 와서 살까 봐요?"
"오늘 당장이라도 들어올래?"
나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난인지, 조금은 진심인지 모르게 흔들리는 그의 눈빛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소에다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나래는 생각보다 신중한 사람이더라. 나도 천천히 생각하려고."
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오히려 더 깊은 안도감을 주었다.
"나래, 이제부터 우리 집에 자주 와. 저녁도 아침도… 이야기하고 싶은 날은 언제든."
그는 나래의 손등에 조용히 손을 포개었다.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온기였다.
나래는 그 눈빛 속에서 자신의 마음이 자라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겨울을 앞둔 계절인데도, 마음 한쪽이 봄처럼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너무 달콤하네요… 선생님 때문에 수업에 집중 못 해요."
나래는 낫토를 조심스럽게 비벼 밥 위에 올렸다. 따뜻한 밥 냄새가 아침을 가득 채웠다.
두 사람은 함께 제4센트럴 하우스를 나섰다. 그 순간, 출근 준비를 하던 미나코와 마주쳤다.
"나래? 왜 여기서 나와? 아… 선생님도."
나래는 당황해 얼른 말을 꺼냈다.
"어제 선생님께 사과드릴 일이 있어서요. 잠깐 들렀다가 조금 늦었어요."
하지만 미나코는 조용히 웃었다.
"괜찮아. 두 사람이 사귀는 건 병원 사람들도 이제는 다들 알고 있더라."
순간 나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소에다를 바라보았다.
소에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래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확신처럼 느껴졌다.
"나래, 학교에 늦겠다. 타."
그는 서둘러 나래를 차에 태웠다. 파란 차는 부드럽게 기숙사 앞을 빠져나갔다.
미나코는 사라져 가는 파란 차를 바라보았다.
'분명 내가 먼저였는데… 왜 나래가 선생님의 옆자리에 있을까?'
나래가 친구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졌다.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미나코의 가슴에 천천히 쌓였다.
소에다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그런 눈빛을 보여준 적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이 고스란히 나래에게 향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옆자리에 다른 이름이 놓여 있는 것보다 더 쓸쓸한 순간이 또 있을까.
미나코는 코트 깃을 여미며 걸음을 옮겼다. 가을바람이 더욱 차갑게 스며들었다.
학교에 도착한 나래는 강의실로 향했다.
이제 곧 중간고사.
유학 생활이 익숙해질수록, 시간과 계절도 어김없이 흐르고 있었다.
1년 뒤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선생님은.
강의실 창밖으로 후카가와의 가을 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하늘. 하지만 그 맑음 속에서 나래는 겨울의 냉기를 느꼈다.
기쁨과 불안이 한 페이지에 함께 적히는 날들. 사랑도, 유학도 그런 것이었다.
소에다가 건넨 도시락 가방이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아직 따뜻한 그 온기를 느끼며, 나래는 노트를 펼쳤다.
언젠가는 식을 이 온기를, 오늘도 천천히 붙잡아두는 하루였다.
48세부터 시작된 남편의 변화는 깊은 불안증과 무기력증으로 나타났습니다.
무기력함에 빠진 스스로에게 미안해하다가도,
그 마음을 가족이 몰라주면 이내 화를 내고 마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저희는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설을 써 내려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가 저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숨구멍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