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감상했다.
<캐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뒤이은 웰메이드 퀴어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난 후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가슴이 아리고 먹먹했다. 아마 지난 날의 누군가와의 교감을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이 투사된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고급지고 디테일한 미장셴이 인상적이라 단 한 순간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을 베이스로 한 주제이다보니 그림 그리는 장면이 나올 때의 붓칠의 섬세한 감각들이 마치 눈 앞에 생생한 감각들을 재현시켜주는 것 같았다. 감독의 의도가 내 마음을 후벼팠고, 그림에 대한 갈증이 있던 나에게 아주 인상깊었다. 휴일에 붓을 들고싶게 하는 욕구가 마구 샘솟았다. 인체의 많은 것을 담당하는 '손'과 '눈'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주신 선물인 것 같다. 삶에 치여 잊고있었던 나의 보물같은 잠재력을 다시 건드려주고 싶다.
배우의 시선을 빌린 느린 호흡이 인물들의 감정선에 물흐르듯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인물들이 서로와 사랑에 빠지는 지점은 '서로의 비언어적 행동으로 마음을 유추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는데,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나의 자아가 전혀 없는, 그러니까 나의 시선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관조하고 관찰하는 그 부분은 100%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아주 자그마한 표정부터 몸짓까지, 누군가를 관찰할 때는 그만큼 나의 한정적인 시간이라는 자원을 그에게 쏟아붓는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오롯이 사랑에 빠졌음을 증명하는 확실한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작품 서사가 관통하는 부분이 '관찰'이라는 키워드이지만, 이를 통해 내가 무엇을 가만히 관찰하며 사랑해본 적이 있었나. 물음을 던지는 지표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그런 적이 있고, 그 대상으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찾은 적도 참 많았네.
배우 클로즈업 장면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 나도 그들의 시선을 빌려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영화 내내 한두장면 외에는 배경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이후에 처음보는 연출이다. 또한 '촛불'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촛불이 등장할 때마다 차가웠던 공기가 따뜻하게 변하고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이 주력으로 연출한 바라고 생각한다.
또한 재밌었던 점은, 남성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여성 세 명만의 편안하고 잔잔한 스토리와 묵직하고 깊은 감정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많은 디테일에 감탄하며 본 영화이다.
배우의 외모가 너무 아름답고 한 폭의 작품 같아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그 시대의 풍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과 의상, 소품 등이 프랑스의 18세기의 배경이 어떤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 시대는 자유와 평등과는 다소 거리가 먼 문화를 향유했기에 현대의 나는 다소 이해와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영화가 지향하는 지점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내용이 어떻게 흘러가던 간에, 그들이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안에서의 자유와 평등이다.
마리안느의 또렷한 눈망울의 시선, 엘로이즈의 발그레한 미소와 팔자주름, 바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들만의 뜨거운 입맞춤, 조심스럽지만 날카로운 사랑의 표현, 서늘한 공간 속에서 등장하는 촛불의 온기, 누군가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유일한 그 순간이 인상깊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 작품은 어떻게 그리고 탄생하게 된 것일까? 사랑에 빠진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곧 작품이 되었다는 설정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의 이상한 쾌감이 반가웠다.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더라도 그들이 나눈 교감과 사랑은 그들의 세상 한 켠 어딘가의 뜨겁게 자리잡고 있겠지. 내 혼동의 마음을 투사해서 보게 되어 더 보는 즐거움이 더해졌던 듯 하다.
눈이 많이 오는 날, 마음 환기를 시키러 산책을 나갔다왔다. 하얗게 덮인 눈꽃세상을 뽀드득 밟으며 걷다가 뒤돌아 보았을 때의 나의 발자국에 울컥한 감정이 차올랐다.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여길 수 있는 나의 발돋움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보란 듯이 의미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모든 이들의 삶 또한 그렇겠지. 기록하지 않고 남겨두지 않아 증발해버린 것 같은 청춘과 과거는, '내' 자신이 그걸 기억하고 돌이켜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그 때의 그들의 사랑을 그림으로 남긴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