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해봐요~ 이렇게~

의미 있는 순간들 찾기

by grassrain


문득 서랍 속 3년 치 일기장을 꺼내본다. 펼치자마자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괜히 들춰봤다. 말로 형용할 수는 없지만 익숙한 감정이다. 껄끄럽다. 다시 읽어 보지도 않을 거면서 눈길, 손길 잘 닿는 곳에 참 곱게도 모셔놨다. 마치 일기장이 ‘나 여기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 나한테 눈짓 주는 거 같다. 왜 못 버릴까? 왜 끊어내지 못할까? 나도 내가 이해 안 된다.

일기장 안엔 매일 생각을 끄적거리는 거 말고도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문구들을 따로 적어 붙여 놨다. 은근슬쩍 기대한다. 후루룩 들춰본다. 역시나 다시 보니 싱겁다. 당시엔 그 문구에 혼자 환호성 지르며 꼭꼭 눌러써놨었는데... 너무 별로다. 이제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니 더 많이 읽고 멋진 문구들을 모아야겠다. 너무 하찮아 보인다. 그나마 그럴듯한 문구 몇 개를 다시 따로 적어본다. 소리 내 읽어본다.


“왜 당신은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춤추는 별”

“새가 머리 위를 지나가는 건 막을 수 없지만, 그 새가 머리 위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는 할 수 있다.”


캬아~ 멋있다. 한데… 이건 아니다.

우연히 나의 카* 프로필 사진들을 본다. 평소 필기도구가 없을 때 와닿는 문구들을 이미지로 찍는다. 그리고 카* 프로필사진으로 설정해 놓는다. 이따금 보면서 나 자신도 위로하고, 친구들도 위로해 주려고... 갑자기 설렌다. 과거의 나 자신 칭찬한다. 드디어 찾았다. 이 문구를 내가 언제 발견했더라? 스토커처럼 여기저기에서 나의 과거들을 뒤진다. 코로나 세상이었던 2021년이었다. 아... 기억난다. 엄마집에서 떳떳하게 훔쳐 온 책이다.


“어느 모로 보나 시간낭비인 짓을 하고 있는데도 당신은 웃고 있군요,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

육아와 가족들 끼니 챙기기에만 급급했던 시기에 만난 이 책은 사랑과 행복을 이야기해 주며 날 위로해 주었다. 그 당시에 나는 뭘 하든 다 의미 없고 부질없게 느껴졌었다. 내가 뭘 해도 변하지 않을 세상. 그저 세상의 먼지 한 톨.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눈으로 아무것도 안 하려 했다. 하지만 이 문구는 내 머릿속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유리구슬 같은 생각들을 하나씩 깨부쉈다. 그리고 ‘어쩌면 뭔가 있을지도?’가 빼꼼 튀어나왔다. 그렇게 이 문구는 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나는 오래 시간 동안 주어진 역할과 익숙한 관습들을 이어가려고 무던히 애쓰며 살아왔다. 사람이라면 으레 생산적인 일과 미래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 명분과 목적이 분명한 일들로 알뜰살뜰히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운동이나 책 보기는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이며 필수다. 뭘 하든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어른이라면 힘들어도 좀 참을 줄 알아야 한다. 모두들 힘들게 살지만 즐겁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웃으며 사는 게 행복이다. 이런 생각으로 애 둘을 짊어지고 달려온 나에게 코로나는 나를 더 위축, 긴장하게 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최소한으로 느릿느릿 움직였다. 에너지를 분배해야 하는 명분이었다. 엄마로서 해내야 하는 일들을 이고 지고 하루 온종일을 꾸물거렸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 건 사치라 생각했다. 쓸데없는 공상이나 멍 때리기 따위는 제일 어이없는 일이다. 무능력으로 인해 비생산적인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헌데 이 똑똑하고 멋진 작가분께서 말씀하시길, 터무니없고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내가 웃고 있다면? 시간을 잘 보내는 거라 하신다. 어머나...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내가 즐겁고, 앞니가 보이게 웃었다면... 내 행복 버튼이 눌리는 것이다. 그런 버튼 여러 개 만들어놓고 돌아가며 한 번씩 누르면 그거야 말로 행복한 인생 아닌가?


이제야 내 행복 버튼을 찾고 있다. ‘그게 뭐냐.’ ‘엉뚱하고 이상하다.’ 말하는 사람들아. 절대 하지 말아라! 나만 누릴 거니까!!

나에게만 ‘의미 있는 순간들’을 자랑해 본다. 궁금하다면 한 번쯤 해보길 권한다.

* 뻑뻑한 과자를 입 안 가득 씹다가 삼킨다.

; 목구멍을 다 막고 숨 막힐 것 같은 느낌도 좋지만 그 뒤에 액체를 마시면 더 큰 쾌감이 느껴진다.

* 샤워기로 생긴 물거품들을 구경한다.

; 어렸을 때 물거품이 되고 싶었는데 왠지 인어공주가 돌아온 거 같아서였다.

* 재밌는 라디오에 ‘웃음을 참으며’ 걷는다.

; 웃음을 참았다가 웃으면 더 신난다. 위아래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으며 최대한 참아보지만 항상 실패. 기분 좋은 실패다.

* 지나가는 아기들 눈을 마주쳐 손 인사한다.

; 육아로 힘든 엄마가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 식물의 끝부분부터 나무기둥까지 눈으로 나뭇가지 미로 찾기를 해본다.

; 평소 미로 찾기를 좋아하지만 나뭇가지가 해를 향해 뻗어나간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의미 없고 바보 같아 보이는 시간이지만 나에겐 행복이다. 나에게 위로가 되고, 움직일 용기를 북돋아주는 시간이다. 세상에는 내가 상상도 못 할 새로운 것들과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많을 테다. 시도해 볼 수 있고, 하고 싶은 게 점점 더 많아진다. 전에 없던 ‘시간’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내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계획 없는 하루가 시작되면 너무 신난다. 하루쯤은 의식의 흐름대로 살아가는 시간 보내기를 추천한다. 너무 미리 많은 걸 계획하지 말고 예상치 못함을 즐겨보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새로운 오솔길로 걸어가 보자.

작가의 말 ; 한참을 고치고 고민했는데도 한참 부족해 보인다. 처음에 결말을 계획을 하며 글을 쓰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 의도와 달리 너무 썡뚱 맞은 결말을 맞이해 당황스럽다. 나를 움직인 한마디를 어느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전혀 없는듯하다. 멋진 영화나 글 혹은 명상선생님들에게서 들은 것 같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글짓기대회를 제일 싫어하던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글 쓰는 것에 욕심이 생긴다니... 나로선 놀랍다. 내 인생 또한 내 글처럼 어찌 될지 모른다. 글 쓰는 시간이 살짝 괴롭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주제로 많은 에세이를 더 쓰고 싶다. 빨리 잘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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