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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는 토박이가 없다?

제2부 역사와 문화가 블렌딩된 도시

by 규아

| 탁류처럼 흘러든 사람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 채만식, 『탁류』 중에서

금강하구


멀리서부터 흘러온 물줄기들이
부유하고, 흔들리고, 때로는 소용돌이치며

하나의 강을 이룬다.

강은 모든 것을 감싼 채

바다로 흘러간다.


군산도 그랬다.

섬에서, 육지에서, 먼바다 건너에서

사람들이 흘러들어왔다.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서 온 사람들.
떠밀려온 이도, 스스로 닿은 이도
모두 이 도시의 물줄기가 되었다.


그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혹은 깨어진 꿈을 안은 채
바다를 향해 흘러와
이 도시 어귀에 자리를 틀었다.

뜬다리 부두에서 이동하는 사람들

이곳엔 오래전부터 ‘토박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섬에서 육지로 건너온 사람들,
간척으로 새로 생긴 땅에 정착한 이들,
그리고 바다가 열린 후 닻을 내린 이방인들까지
군산은 늘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이자,
누구든 머물 수 있는 도시였다.


군산은 일제에 의해 ‘기회의 땅’이라 불렸지만,
그 기회는 조선인이 아닌, 이방인의 몫이었다.

그들은 갯벌을 메우고 도시를 정비하며

군산을 자신들의 터전으로 잠식해 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쌀을 실어 나르던 부두 노동자의 굵은 땀방울과
수탈에 맞선 이름 없는 저항의 시간이 겹쳐 있었다.

바다 건너 청도항에서 떠나온 화교들도

도시 한복판에 요릿집을 열고,

붉고 뜨거운 국물 속에 정착의 맛을 담았다.

그것은 바로 ‘짬뽕’이라 불리는 음식의 시작이었다.

군산에 도착한 호남 최초의 선교선(추정)

그 무렵, 먼바다를 건너온 선교사들도

이곳에 발을 내디뎠다.

낯선 언어와 옷차림 속에서

서양의 이방인은 조용히 도시를 보듬었다.


그들이 남긴 학교와 교회, 병원

그리고 붉은 벽돌 건물들은
군산 항일의 기억과 함께 지금도 도시 어딘가에서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번성한 항구도시는 더 많은 이들을 불러들였다.


자본, 일자리, 토지를 쫓아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도시의 결을 한 줄씩 더해갔다.


그리고 전쟁. 6.25의 포성이 울린 뒤,
피란민들은 황해를 건너와
비탈진 언덕에 판잣집을 세웠다.

지금은 관광지가 된 판잣집 동네

겨울이면 얇은 외투 속에 아이를 품고

바람을 막으며 산비탈을 올랐다.

그 시절, 한 그릇 국수와
불빛 아래 웃음소리가 삶을 붙잡았다.


그즈음 미군기지가 들어섰고,
영어 간판과 양식 건물,
외화를 좇는 상점들과 새로운 유흥의 문화가
도시의 또 다른 결을 생기게 했다.


이렇게 시간의 물결은 사람들을 밀어냈고,
또 받아들였다.
고향으로 돌아간 이도,
어딘가로 떠난 이도 있었지만,
남겨진 이들의 시간이 군산을 빚어왔다.

한강 이남 최초로 만세운동을 한 군산


지금도 군산에는

산업단지와 새만금 개발,
노동과 기회의 이름으로
또 다른 물줄기들이 이 도시에 스며들고 있다.


깨어진 꿈이든, 이룬 꿈이든

맑음과 탁함을 가리지 않고 블렌딩 하여

고유의 향과 맛을 빚어내는 군산

그렇게 군산은 여전히

탁류처럼 흐르고 있다.



**이 글이 '블렌딩의 도시, 군산에 취하다'의 연재글인데 제가 지정을 잘못해서 삭제되어서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게된 구독자님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또한, 라이킷과 댓글도 함께 지워져서 응원해

주신 분들께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함께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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