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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가 빚은 군산의 맛과 멋

제2부 역사와 문화가 블렌딩된 도시

by 규아

바람에 실려 온 냄새는 언제나 낯설고도 매혹적이었다. 군산항 부두 끝, 볕에 그을린 얼굴로 짐을 나르는 이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억양은 바다 건너 산둥의 것이었다. 배를 타고 열 시간 남짓, 목숨을 건 항해 끝에 닿은 땅. 군산은, 고향을 등지고서도 다시 삶을 일굴 수 있는 터전이었다.

군산의 유곽거리

메마른 땅을 부드럽게 풀어 콩과 채소를 심는 손길. 북방에서 온 이들은 밭농사의 결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밭에서 시작해 장사로, 다시 골목의 불 앞에서 삶을 이어갔다. 개항도시에는 ‘따오’ 세 자루로 부를 꿈 꾸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칼과 가위를 의미하는 따오. 머리를 다듬는 가위, 옷과 구두를 고치는 가위, 음식을 빚는 칼. 그 작은 쇳덩이들이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의 밥벌이를 열어주었다.


1941년, 군산에 전국 세 번째 화교학교가 문을 열었다. 한강 이남에서 유일했던 교정에는 중국어와 조선어가 바람처럼 섞여 흘렀다. 그러다 1960년대 「외국인토지법」으로 화교들은 갈아온 밭을 떠나야 했다. 남은 선택지는 새로운 업을 여는 것. 그 길의 끝에서, 골목마다 붉은 간판이 세워졌다.

군산 화교역사 기록

짬뽕의 시작도 그 시기였으리라. 초마면의 맑은 국물에 실고추가 스며들고, 어느 날부터는 고춧가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기름에 볶은 마늘 향이 먼저 코끝을 스치고, 뜨거운 불에서 해산물이 터지듯 익으며 국물 속으로 제맛을 내렸다. 군산의 바다는 넉넉했다.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작은 생선, 졸복과 주꾸미, 제철 조개들이 육수 속에서 제자리를 찾았다. 그 깊고도 너른 맛이, 군산 짬뽕만의 결을 빚어냈다


처음 빨갛게 물든 그릇을 보고 손님들은 “웬 피여!” 하며 놀랐지만, 한 번 맛본 얼큰함을 잊지 못해 다시 돌아왔다. 그릇 속에서 익어가는 것은 해물만이 아니었다.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의 땀과 숨결, 그리고 이 땅에서 뿌리내린 세월이 함께 우러났다.


개항기 시절, 일본 상인들이 항구와 시장, 금융권을 장악했어도, 음식만큼은 화교들이 버텼다. 일본식 상점과 중국식 요릿집이 나란히 선 거리, 서로 경쟁하면서도 손님을 주고받았다. 그 시절의 풍경은, 전혀 다른 두 문화의 묘한 공존이었다.

사진 : 군산시

짬뽕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시대의 변화를 품고, 이주민의 기억을 담은 그릇이었다. 서로 다른 것이 만나 섞이고, 다시 끓어오르며 새로운 맛을 만들었다. 그것은 한 그릇의 이야기였고, 한 도시의 역사였다.


짬뽕이 그러했듯, 군산도 그러했다. 바다 건너 온 손길이 빚어낸 이 도시의 맛과 멋은, 오늘도 골목 어귀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 속에 살아 숨 쉰다.


그리고 그 향은, 상처마저 삶으로 피워낸 이 도시의 골목골목을 천천히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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