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역사와 문화가 블렌딩 된 도시
수덕산 아래, 낯선 바람이 불었다
1895년 봄, 이국의 선교사 두 명이 군산 땅을 밟았다. 윌리엄 전킨과 알렉산더 드루. 그들이 처음 마련한 초가집 두 채엔 예배소와 약방이 나란히 들어섰고, 이 낯선 곳에서 그들은 서툰 말을 배우며 마을을 돌고, 사람들과 섞였다.
오전엔 종교를, 오후엔 환자를 품었다. 그것이 군산 선교의 시작이었다. 전킨은 말 위에서, 드루는 배 위에서 금강과 만경강을 오르내렸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 무료로 진료한다는 이야기, 기도와 배움이 있는 집이 있다는 이야기. 달걀과 조개, 마른 생선을 손에 들고 사람들은 그들의 집으로 향했다. 한 동네의 포교소는 병원이 되었고, 학교가 되었으며, 결국 도시를 조용히 움직이는 흐름이 되었다.
문물은 신앙의 외투를 입고 건너왔다
자전거 한 대가 조선을 누볐다. 전킨이 미국에서 가져온 ‘램블러’는 이국의 신문물이었다. 배달 수단이자 포교 도구이자, 마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색 물건. 이 자전거는 근대의 상징이 되었고, 사람들은 바퀴 소리를 따라 모여들었다.
그가 세운 영명학교는 호남 최초의 기독교계 학교였다. 과학과 음악, 역사와 신앙이 나란히 배워졌고, 학생들은 그곳에서 야구와 축구를 처음 접했다. 찬송가와 서양악기가 울려 퍼지고, 영어를 따라 읽었다.
교실 안엔 신분의 구분이 없었고, 이름 없이 불리던 여자아이들에게도 교과서가 주어졌다. 드루의 아내, 전킨의 여동생, 선교사의 딸들이 교사이자 간호사로 나섰고, 멜본딘 여학교는 지역의 첫 여학교가 되었다. 배움은 지식만이 아니었다. 그건 세상을 바꾸는 뿌리였다.
도시를 바꾼 건, 믿음과 치료였다
일제의 조계지 확대와 함께 그들은 수덕산을 떠나 구암동으로 향했다. 작은 어촌마을 ‘궁멀’에 자리를 잡은 이곳은 병원이 되었고, 학교가 되었으며, 교회가 되었다. 마침내는 선교의 거점이 되었다. 배를 타고 금강과 만경강을 오르내리며 충청도 지역과 전라도 북서부는 물론 고군산군도까지 미친 이방인의 진료와 선교. 그들은 병든 몸뿐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과 질곡의 삶을 함께 돌봤다.
진료는 돈 대신 닭과 생선으로 돌아왔고, 소문은 금세 이웃을 향해 퍼졌다. 야소병원은 하루 수십 명의 환자를 돌보았고, 이곳에서 의술을 경험한 조선인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박사가 되었다. 이후 야소병원은 구암병원으로 이어지고, 군산의료 역사의 한 축이 되었다.
신앙이 일으킨 거룩한 분노
1919년 3월 5일 영명학교 운동장에서 50명의 학생과 교사들이 태극기를 들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교회, 복음을 전한 학교, 치료를 베푼 병원은 저항의 거점이 되었다. 그날 군산의 만세는, 호남 지역 만세운동의 시작이었다. 영명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은 3.1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선교사가 함께 있었다. 선교는 단지 복음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깨우고, 도시에 불을 지폈다.
일제에게 기독교는 눈엣가시가 되었다. 결국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의료 선교사들을 체포, 감금하고 강제로 추방하게 되었다.
선교의 흔적은 여전히, 군산을 흐른다
오늘의 구암동, 멜본딘여학교는 군산영광여고가 되었고, 영명학교는 군산제일고로 이어졌다. 야소병원은 폐원했지만 ‘구암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잇다 마침내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붉은 벽돌, 외국식 처마선, 예배당 안 오래된 풍금 하나, 그리고 ‘복음으로 시작된 문화’는 아직도 도시 곳곳에 녹아 있다.
잊힌 이름들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평소 조선인임을 강조하며, “나는 궁멀 전 씨다. 내가 죽으면 궁멀에 묻어달라”라고 당부한 전킨의 묘는 찾지못한 채 100년이 지나 구암동 인근에 가묘로 세워졌고, 드루는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독립운동가들을 도우며 한국의 독립운동에 마음을 두고 살았다. 그들이 군산에 남긴 것은 건물보다 큰 유산, 종교보다 넓은 울림이었다.
그들이 남긴 것
호남 지역 최초의 세례 교인이 나왔고 호남 최초의 선교지인 군산, 이곳의 복음은 단지 종교의 전파로 끝나지 않았다. 선교사들이 학교에서 체육 활동 때 소개한 축구와 야구는 매년 군산에서 개최되는 금석배 전국축구대회에 축구인들을 불러모으고, 야구는 군산상고의 영화같은 역전승으로 ‘역전의 명수, 군산’이란 애칭을 낳았다. 병원과 학교, 언어와 스포츠, 음악과 계몽, 그리고 교육과 저항의 정신. 이방의 발자국은 한 도시를 흔들었고, 새롭게 빚어냈다.
군산은 여전히 그런 도시다. 기억 위에 문화가 쌓이고, 신념 위에 공동체가 서며, 믿음과 돌봄, 낯선 신문물들이 어우러져 발효되는…. 그렇게, 블렌딩의 도시 군산은 오늘도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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