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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역사와 문화가 블렌딩된 도시

제2부 프롤로그

by 규아
가창오리 군무

해 질 무렵의 하늘.

강과 바다가 맞닿은 금강의 수면 위로

검은 점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가창오리.


이 철새들은 찬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수천 킬로미터를 여정을 감수하고

이곳, 군산을 찾는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작은 몸들이

서로를 부르듯, 감싸듯

공중에서 하나의 곡선을 만든다.


곡선은 곧 물결이 되어

하늘 위에서 일렁인다.

살 곳을 찾아온 철새들이

절경을 자아내는 곳, 군산

사람도 그랬다.


풍요로운 곳을 찾아

섬에서 육지로 건너온 사람들,

해외에서 배를 타고 온 이방인들,

전쟁과 피난, 이주와 정착이라는 풍랑에 떠밀려 온 이들,

한데 모여, 이 도시에 시간들을 쌓았다.


가창오리가 좋아하는 금강하구둑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군산에는 토박이가 없다"고.

그 말은 이 도시의 슬픔일 수도 있지만,

가장 강한 생명력의 흔적이기도 하다.


섬이었던 군산은

간척으로 육지를 연결하고

바다를 이어 도시가 되었다.

그러다 항구가 열리고,

개항이라는 이름 아래 이방의 시간이 밀려들었다.


일제는 군산을 ‘기회의 땅’이라 홍보하며

도시를 계획하여 사람을 모았다.

화교들은 좁은 골목 속에서 상권을 이루었고,

선교사들은 교회와 학교를 세우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도시에 흔적을 남겼다.


전쟁이 도시를 휩쓸고 간 뒤엔

피란민들이 비탈진 언덕에 둥지를 틀었다.

살 곳을 찾아 다시 시작한 삶의 터전.

미군들을 위한 음식점과 술집도 들어섰다.

일본식 가옥, 중국 상가, 영어 간판,

그리고 전국 각지의 사투리가

한 골목 안에 섞여 들었다.


하나의 얼굴을 가진 적이 없는 도시,

군산은 낯선 것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만의 방식으로 발효시켜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냈다.

사람과 물자가 오갔던 항구

짬뽕과 단팥빵이 그러했고,

지게미 향이 감도는 청주 한잔도 그러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도시에서 익어간다는 것.


그래서 군산은 각각의 섬처럼

어떤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그 다름, 그 섞임, 그 수용의 반복 속에서

자기만의 향을 빚어낸다.


바알간 노을빛 선연한 하늘과 어우러진

가창오리들의 군무처럼

이 도시는

음미하는 이들의 마음을 서서히 일렁이게 한다.


흐트러지다가 어우러지고

떠나가다가 다시 만나게 되지만

머무른 시간만큼 도시의 농도도 깊어진다.


지금부터는 그 시간들의 결을 더듬고 싶다.

이 도시가 어떻게 ‘블렌딩’되어 왔는지를

되새기며 천천히 취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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