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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Jul 26. 2022

#1. 현태, 그 남자가 출근 못한 이유

내일은 오를 거야, 제발

2020년 10월 14일, 옅은 어둠 속에서 주식창의 푸르스름한 빛이 현태의 눈꺼풀을 사납게 할퀸다. 깡마른 흙덩이 같은 누런 눈곱을 다 떼어내기도 전에 다우산업과 나스닥, 그리고 S&P500지수를 먼저 살핀다. 전날 밤 미국 증시는 장 초반 게걸음을 치다가 새벽녘에 애매하게 끝났다.     

‘오늘 한국 증시는 빨간 나라일까?’    

현태는 팬데믹 여파로 코스피가 1400 포인트까지 떨어졌던 2020년 3월에 친구 말을 듣고 1천만 원으로 주식을 시작한 사십대 아재다. 그저 월급의 10분의 1만 벌어보자고 시작했는데, 그게 조금씩 늘어나 지금은 ‘억’ 소리가 난다. 그리고 지난주에 이런 씨팔, 2천만 원을 손절했다. 투자금액의 딱 18%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그땐 진짜로 현타가 올 것 같다.   

△ 나처럼 똑똑한 놈이 어쩌다 개미지옥에 빠졌을까?

시퍼런 잔고를 다시 마주하는 순간 선인장을 삼킨 것처럼 머리가 콕콕 쑤셔온다. 직장생활을 전부로 알고 살던 자신이 그날은 왜 그토록 무모한 생각을 했던 걸까. 언제 어디서부터 왜 이렇게까지 꼬였을까. 오답노트를 뒤지듯 주린이로 데뷔했던 7개월 전을 떠올려본다.  


학교다닐 땐 모든 게 명확했는데, 이건 생각할수록 답이 없다. 모래를 한 움큼 삼킨 것 같은 갈증이 몰려온다. 냉장고를 연다. 지난주쯤 마시다 만 생수병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외롭다. 삼성동 본사에서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서울 촌놈이던 현태는 벌써 3년 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다.  


허리를 숙여 싱크대 서랍을 뒤져보는데 감전이라도 된 듯 정수리부터 엉덩이까지 찌릿해온다. 누군가 뾰족한 바늘로 손톱 밑을 찔러대는 것처럼 기분 나쁜 전율이 일다가, 이내 고추냉이의 초록색 매운맛이 혀끝에 핑 돈다.


자세를 바꾸지 못한 채 그렇게 10여 분을 서 있다가 벽을 잡고 조금 움직여 보려는데, 그 순간 귀가 윙윙 울리기 시작한다. 지긋지긋한 이명(耳鳴),‘쉬쉬시식-’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뚜우왕-’매미울음 같기도 한 굉음들이 유령의 흐느낌처럼 계속 들린다.    

  

같은 날, 7시 55분. 출근 35분 전.    

현태는 아직도 침대에 누워있다. 평소라면 찜질을 좀 하고, 멍한 머리를 흔들며 어떻게든 시간에 맞춰 출근하려 했겠지만, 이날은 좀 달랐다. ‘회사는 가서 뭐해?’라는 생각이 고름처럼 진득하게 배어나온다. 울고 싶은데, 뺨까지 맞은 기분이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든다.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시야가 까맣게 바뀌면서, 회사를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암세포처럼 점점 더 커진다. 현태의 온 신경은 지금 주식에 닿아있다.     


현태는 몸이 아프다는 뻔한 핑계를 대충 적어 팀장에게 카톡을 보내버린다. 팀장이 어떤 썩은 표정을 지을지 잘 알지만 애써 모른 척 한다.      


병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건강관리도 능력인데, 이런 식이면 너한테 중요한 일을 어떻게 맡기겠냐”라는 일장연설이 핸드폰으로 쏟아진다. 그는 쌍욕을 정중하게 하고, 협박마저 친절하게 하는 까칠한 상사다. 아마도 직원의 어설픈 꾀병따위는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지금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8시 57분. 출근은 없다.     

현태는“오늘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는 메시지로 휴가에 쐐기를 박고 주식앱을 연다. 개장 시간을 3분 앞두고 현태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아니 트랙 위에 선 경주마처럼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출근은 이제 머릿속에 아예 없다.


만약 그때 현태가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딱 5초만 주의 깊게 봤더라면, 탐욕-불안-공포-흥분, 그리고 아주 약간의 설렘과 미련과 기대가 한 데 뒤섞인 기이한 생명체와 마주했을 것이다. 분명 자신의 모습이지만, 어딘가 자신의 모습이 아닌 낯선 존재.

△ 한 번 시작하면 그만 둘 수 없는 천국과 지옥의 맛

그랬다. 주식을 몰랐을 때 신문 속 이야기가 현태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주식을 알고부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뉴스를 하루에 100번쯤 검색하고 주가를 200번쯤 확인하는 게 아침에 하품을 하고 양치를 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 됐다.      


인도네시아에 내린 폭우가 걱정되고,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 수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쏠 때마다 동북아 정세와 국제안보가 코끝의 바퀴벌레처럼 신경 쓰인다.  장담컨대, 아내 몰래 연봉이 훨씬 넘는 억 단위의 돈을 주식에 걸어 놓고 그 절반을 몇 달 사이에 잃어버리면, 지구상의 모든 남자는 다들 현태처럼 되고 만다.     


8시 59분, 주식 시장이 열리기 60초 전      

현태는 4초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7초간 꾹 참는다. 폐에서 진한 피 맛이 올라오기 바로 직전까지 숨을 참았다가 한 번에 터트리듯 ‘푸우-’ 8초간 길게 내뱉는다. 미국의 유명한 교수가 개발했다는 ‘불면증 극복 4·7·8 호흡법’인데 깨어있을 때도 평정심을 주는 효과가 있다. 제발.  

   

D-time, 오전 9시.     

드디어 현기증과 희열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기쁨과 슬픔의 그 시간이 다가왔다. 현태는 어제 그렇게 깨지고도 오늘 다시 출근하는 직장인의 안쓰럽고 담대한 마음으로, 죽음을 앞두고도 맹수의 이빨 아래로 나아가야 하는 검투사의 결연한 표정으로, 혼자 나직하게 말했다.      

“자, 드가자!”     


|덧붙이는 말|
이 이야기는 20회 분량의 소설입니다. 혹시라도 작가의 실제경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몇 가지 우연이 겹쳤을 뿐입니다. 댓글 달아주시면 소설연재에 큰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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