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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Oct 04. 2022

유연(油然), 교장 남편처럼  보이스 피싱 당하지 않기

슬기로운  선생님 생활

유연(油然):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음.
 * 생각 따위가 저절로 일어나는 형세가 왕성함.
 


2021년 5월  어느 일요일   저녁  5시 37분.

동네 언니들과 차를 마시고 놀다가  우리 집 현관문을 열자 긴 콘센트 전선줄이 보였다.

청소기 사용을 위해 사놓았던  10m 전선 끝에는 노트북과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 한 손에는 마우스를 다른 한 손에는 TV 리모컨을 들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나:  여보 뭐해?

남편:  응, 수지가 핸드폰 고장 났다고 뭔 보험 든다고 해서 계좌 열어달래. 3시간째 이러고 있어. 피곤해~

나: 그거 보이스 피싱 아냐? (날카로운 목소리)

남편:  (너무 놀라 아무 말도 안 하고 얼어있었고, 꼰 다리 그대로 얼음이 되어 있었다.)

나: 빨리 인터넷 뱅킹 중단해. 한테 전화해봤어? 내가 전화할게. 못살아....


그다음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상상한 대로다.

딸에게 전화했더니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고  보이스피싱 대처법에 관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남편의 주거래은행이었던 농협중앙회에 신고했다.  


확인 결과 이미 국민은행 강북지점에 남편 이름으로 계좌가 만들어졌고 그곳에 1,300만 원이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신고 전화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었다. 신고 30분 만에 연락은 준다던 농협과 국민은행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1시간 2분 만에 최종 연락을 받았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핸드폰으로  은행마다 사고 신고를 하며 계좌는 물론 모든 카드도 정지시켰다. 경찰에도 신고해서 2명의 늠름한 경찰관이 9시에 우리 집에 왔다. 계좌에 돈이 남았으니 다 돌려받을 받을 거라는 위로를 듣자. 안심이 되고 배가 고팠다. 


시계를 보니  9시 3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편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화를 꾹꾹 누르며. 거의 네 시간 동안  물도 마시지 못한 채 서서  전화통을 붙잡고 있었다.


남편도 꼰 다리를 풀고 소파에서 일어나 지하상가에 가서 라면을 사 오겠다고 나갔다. 15분 뒤 맨손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다크서클로 까매진 눈으로 나를 보지도 않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카드가 정지돼서 라면 못 샀어." 카드 정지를 시킨 걸 까먹고 카드 들고나가서 허탕 친 것이다.

그날  나는 평소 잘난 척 대마왕 남편의  처참한 표정을 살피면서  "그래. 마이너스 통장에 남은 돈 6,000만 원을 다 빼내가지 않아 너무 다행이야. 그리고 찾을 수 있다잖아. 우리 돈이 남아있어서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고맙다`며 남편을 위로했다.


그 뒤 3개월에 걸친 내사 끝에 남편은 돈을 돌려받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남편 계좌에 있는 돈으로 고놈에게 당한 4명과 비례 배분되어 860여만 원을 돌려받았다. 440만 원을 기부금으로라도 인정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미숙했던 범죄자들이 우리 돈을 빼내가지 못하고 남편 이름으로 계좌를 만드는 바람에 돌려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떠오른다. 그날이


다리 꼬고 소파와 한 몸 되어 누워서 3시간 동안 은행계좌 열어주던

중학교 교장선생님인 남편.


28년 전 남편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캠코더로 인터넷 강의를 찍어 몇만 원 분유값을  벌어왔고,

각종 컴퓨터 자격증만 7개를 보유한 인기 많은 여학교 국어선생님였다.


그런 남편은  꽉 막힌 교직사회에서  33년의 경력을 채우는  동안

서서히 사고가 굳어져서 자신이 경험한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외골수가 되었다. 

딸의 말이면 뭐든 껌뻑하는 남편은 딸을 사칭한 범죄자에게  고스란히 은행계좌를 열고

친절하게 비밀번호 넣어주며 마이너스통장 곡간을 내 주었다.


최근 아는 교장선생님이 또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교사인 딸이 카톡으로 3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해서 두 차례 의심 없이 보내시고 나서 확인하니 보이스피싱이었다. 수업 중인 딸에게 전화할 수 없어서 확인을 안 하고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왜 선생님들은 잘 속고 세상 물정에 어두울까?


학교-집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고, 교과서를 기본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시대와 관계없이 늘 통용되는 도덕교과서적인 상식에 사고가 경직되어 있어서 융통성이 없다. 여선생님들은 모임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남자 선생님들은 그나마도 없는 편이다. 한정된 직업, 한정된 정보 속에 갇혀서 생활하다 보니 점점 외골수가 되어간다.


그럼 유연한 사고를 하는 선생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매일신문을 읽어야 한다.

시사에 노출되어야 선생님의 사고를 말랑말랑하게 할 수 있다. 경제 신문과 일반 신문을 병행해서 보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경제 신문만이라도 읽으면 좋다. 칼럼과 문화면을 보면서 나들이 계획도 세울 수 있다.


둘째,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 

헬스, 수영, 배드민턴 등 동호회에 가입하여 다양한 세상의 직업군들과 어울려 배워야 한다. 부동산 사장님들과도 만나면 좋다.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는 부동산 사장님들도 정보통이다.


셋째, 주 1회는 서점을 가서 신간 서적의 동향을 파악하고 2주에 한 번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출해서 봐야 한다. 책만큼 다양한 사람과 정보를 깊이 있게 알려주는 보물은 없다. 성공한 사람들치고 독서를 안 하는 사람은 없다. 교과서와 교육용 지도서만 책이 아니다.


넷째, 줄 퇴근길에는 유튜브로 다양한 교육자료를 들으면 좋다. 

오늘 가르칠 내용 중에서 좀 더 깊게 알게 되면 수업시간에 할 말도 많아지고 전문가 포스를 뽐낼 수 있다. 유튜브 영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와 교육자료를 찾는 습관은 교사를 정보통으로 만들어 준다.


다섯째, 선생님이라는 자의식을 버려야 한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시대 속에서 우리가 아는 지식은 한정되어 있다. 아주 조금 모를 뿐이다.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자. '선생님'이란 타이틀이 '모든 것을 아는 척척박사'라는 의미는 아님을 명심하자.


여섯째, 새로운 경험과 여행을 해야 한다. 

거창한 해외여행만이 여행이 아니다. 집 주변에서 안 가본 골목을 산책하거나 근처 뒷산에 오를 때도 다양한 코스로 등산을 하면서 '새로움'에 노출되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걸어서 다니고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면 많은 것을 느끼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우리 남편이 보이스 피싱당했다고 후배에게 하소연했더니  "선배님, 저희 작은 아버지는 경찰청장 퇴직 3개월 만에 5천만 원 당했어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최근 의사 선생님이 몇 십억 당한 뉴스를 보았다.


타이틀이 있는 '선생님, 경찰관, 의사'들이 더 많이 당하는 것이 보이스피싱일까?

직함이 주는 무게감으로 너무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것은 아닌 지 생각해 볼 문제다.


<사기 안 당하는 선생님>

-책(신문, 유튜브) 보기

-다양한 직업 다양한 사람 만나기

-새로운 일에 대한 체험하기

-안 가본 곳으로 여행 떠나기


나를 의심하며 
책과 사람, 여행으로 
머릿속이 말랑 말랑하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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