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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Sep 14. 2022

정리(整理), 우리는 카페로 출근합니다

슬기로운 선생님 생활


정리(整理):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함.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음.  




학교를 친구와 가는 CAFE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 필요할까요?      


*분위기 좋은 공간과 살아있는 식물들

*깔끔한 싱크대와 건조기, 냉장고

*맛있는 커피와 달콤한 쿠키

*만나도 만나도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     


직장이 카페처럼 커피 향이 나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빨리 달려가고 싶은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같은 학년끼리 교육과정을 짜고, 학년 행사 등을 하기 때문에 동학년 별로 연구실이 있습니다. 연구실은 여분의 교과서와 학습준비물, 복사기가 있어서 잘 관리하지 않으면 아주 딱딱한 창고같이 물건들만 사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버릴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하면 의외로 아늑한 카페로 재탄생되기도 하지요. 3,000원짜리 활짝 핀 꽃과 집에서 키우는 수중 화분 하나로도 분위기는 근사해지기도 합니다.  

    

가고 싶은 카페는 우선 깨끗하고 맛있는 약간의 간식들이 있어야 하고 싱크대가 번쩍번쩍 광이 나지요?     

연구실 책상은 수시로 닦아서 먼지는 없고, 꽃과 식물만 싱그럽게 있어야 카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어요. 바닥은 주 1회 정도 물걸레를 하고 매주 금요일은 분리수거를 해야 합니다. 저는 주로 식물 기르기와 분리수거를, 3반 샘은 청소기와 물걸레로 청소를 하고, 7반 선생님은 수시로 간식을 사다 놓으면서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서 주십니다. 유명 빵집의 커피와 거의 동일한 맛이 나지요.


 수세미는 집도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 버리고 새로 놓습니다. 연구실 은 우렁각시 3~4명이 서로 알아서 유지 보수를 해줍니다. 방학 때 싱크대를 낙스로 닦고, 냉장고와 전자레인지의 문은 열어 놓아야 곰팡이를 예방할 수 있으니 오래 비워둘 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연구실 카페에서 교사들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늙을수록 나만 바라보는 남편 흉보기,

수학이 어렵다고 학원 바꿔 달라면서 징징대는 딸 이야기,

집을 못 사서 고민하는 무주택자,

별것도 아닌 것으로 싸우고 화내는 아이들,

수업시간에 재미있었던 이야기,

명절에 있었던 별난 소식들,

봉봉이로 유산소 운동,

아침에 집 옆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

신선한 바지락으로 아침상 차린 이야기,

작년에 옆반 샘 말 듣고 가입한 펀드 깨야하나 더 넣어야 하나?,

다른 선생님들 다툰 이야기 등


끝이 없는 이야기들이 매일매일 왔다 갔다 합니다.     


선생님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찐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존경할 수 있는 동료가 있습니까?     


 3년 전에 나는 지금 학교로 전근을 왔고, 그때 같은 학년을 했던 2명의 선생님과 서서히 마음을 주고받다가, 이제는 온 학교가 아는 절친이 되었어요. 3년 전에는 2학년을 같이 담임했었고, 작년에는 다른 학년으로 헤어졌다가 올해 다시 같은 4학년에서 만났지요.


그중 한 명(남편 해외근무 따라가서 카톨릭 신앙서 연구를 5년을 해서 인지 인생의 지혜가 넘쳐  ‘성녀’라 부르는 선생님)이 매일 퇴근을 30분~2시간씩은 늦게까지 하면서 교재 연구를 하고, ‘학생들은 우리나라 국가대표들이고, 선생님은 국가대표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입니다. 한국 선생님들이 미국 선생님, 영국 선생님, 일본 선생님들보다 더 잘 가르쳐서 아이들이 세계 속에서 활약하게 해야 한다는 성녀의 말은 학교를 밥벌이로 다니고 있던 나는 충격을 받았고, 그날부터 ‘저=국가 대표 감독’이 되었답니다.


또 한 명(학교 폭력 담당자라서 변호사)은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선생님입니다. 하얀 얼굴에 피부의 광이 나랑 비교가 안 되는 10살 어린 후배 교사인데, 아이들 학습 자료 준비에 진심이에요. 아이들 공책마다 디자인을 넣어 칼라로 인쇄해서 깔끔하게 해서 주고, 학부모님들 안내장들도 연애편지 쓰듯 꽃들과 식물 디자인을 넣어 예쁘게 보냅니다. 연구실에서 인쇄하다가 만나면 “나도 줘!”하며 저는 무임승차합니다. 어린이날 선물을 사서 집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포장해서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그 정성에 감동했어요.     


우리 셋은 나이나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서로의 매력을 발견하고 존중하면서 친구가 되었고, 셋만의 카톡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늦은 밤이든, 주말이든 생활의 요것조것을 상의하며 슬기로운 학교생활과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어제는 연구실에서 의사에게 지나가는 말로, “나 오늘 아침 학교 운동장 7바퀴 돌았어.”라고 하니 변호사가 “어, 언니 우리 집도 바로 옆에 초등학교 있어요. 나도 해 볼까?”라고 말했어요.

“난 아침 6시에는 무조건 나가서 운동장에서 뛰려고 해. 건강검진 때마다 땀나게 운동을 주 몇 회 내고 물을 때 매번 1회라고 뻥치거든. 운동장에 나간 지 10번도 안 되는 데 처음에는 반 바퀴도 못 뛰다가 이제는 7바퀴나 돌 수 있어. 빨리 달리는 건 아냐. 가끔 했는데 늘긴 늘더라고.”라고 내가 말하자.

후배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언니, 내일부터 우리 둘이 인증샷 보내기로 해요. 나도 해야겠어요.”


후배가 하자면 하는 거지 뭐, “그래.”         


    



<카페로 출근하는 선생님>

-연구실 분리수거하기

-연구실 청소하기(주 1회)

-연구실에 간식 사놓기

-연구실에 살아있는 식물 놓기

-이 얘기, 저 얘기 이야기들


                    

이렇게 또 우리 동학년 선생님들은
카페 같은 연구실에서
 서로의 인생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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