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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Oct 11. 2022

용기(勇氣), 진심을 다하되 할 말은 하자

슬기로운 선생님 생활


용기(勇氣):
*씩씩하고 굳센 기운
*사물을 겁내지 않는 기개

                   

딱 그런 날이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나서

아이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담임 전화인 줄 알면서도

전화를 받지 않아 내 속이 더 부글부글 끓어 넘친 날

     

수시로 이상한 소리를 내고

친구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선생님인 나에게도

물건을 집어던진 아이를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고소당할까 봐 무서워서 주먹도 못 쥔 날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싶어

학교의 엄마, 교감 선생님께 전화했다가

말꼬리 잡혀 혼만 나서 사표 던지고 나가고 싶은 날    

 

오늘은 딱 그런 날이다.          



회의를 마치고 올라오니 학년 연구실이 시끌시끌했다.

? 무슨 일이야?”

“3반 샘이 승민 때문에 힘들어서 교감 선생님께 승민이 부모 면담할 때 같이 만나 달라고 했는데 성질내더래요. 혼자 만나라고.”

진짜? 안 만나줄 거면 안 만나준다고 하면 되지 왜 화를 내?”  

그러게, 말이에요. 맨날 학년이 알아서 하라잖아요. 본인은 쏙 빠지고.”

그래? 학년이 알아서 하란다 말이지? 좋아. 동학년이 뭔지 보여주자.”

나는 3반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3반 선생님, 교감 선생님과 무슨 일 있었어요? 자세히 말해봐요.”     


 승민이가 오늘 과학 전담 시간에 또 아이들 수업을 방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서 교감 선생님께 전화해서 하소연하다가 말꼬리를 잡혀서 되레 혼이 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들어보니 일방적으로 교감 선생님 탓만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시시비비를 가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선생님의 말에 맞장구를 쳐 가면서 동료애를 발휘했다.

그냥 지금 조퇴하고 집에 가서 쉬어.”

내일부터 학교 나오지 마. 병가 내.”

그래야 교장, 교감도 학부모도 우리의 고충을 이해하지.”

다른 선생님들도 해서는 안 될 억지스러운 말로 계속 위로를 했다.


10여 분을 떠들썩하게 3반 샘을 위로하고 학부모 민원이라면 벌벌 떠는 교감 선생님의 뒷담화로 열을 냈다. 그런데 갑자기 교감 선생님이 연구실로 불쑥 들어오셨다.     


깜짝이야. 다 들은 건 아니겠지? 어디까지 들었을까?’     


--이세요?”

~ 아까 3반 선생님과 얘길 하다가 말이 꼬여서 풀고 퇴근하려.”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3반 샘은 연구실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우리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시어머니 흉을 보다가 걸렸을 때처럼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데 당사자가 교감 선생님을 보자마자 찬바람을 내면서 나갔으니 말이다.


다행히 잠시 후에  감정을 추스른 3반 샘이 돌아왔다. 민망한 상황 때문에 슬금슬금 선생님들이 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나오려고 일어서는데 교감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 잡았다. “부장님은 같이 있어요.” 성질내는 여선생님을 혼자 감당하기 힘드셨었나 보다.     


사실 3반 승민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 4월 중순에 있었던 3반 공개 수업 때도 행동이 너무 이상해서 교장, 교감 선생님이 3반 선생님께 물었다. “젠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자요? 부모와 통화는 해보셨어요?”

3반 선생님은 “3월보다 더 심해져서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는 영어 시간, 과학 시간, 체육 시간에는 승민이가 특히 더 방해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연구실에서 따로 데리고 있어요. 저는 쉬는 시간도 없어요. 승민이 때문에……라고 말했다.


다음 수업 공개를 보러 떠나시는 두 분은 3반 선생님의 말씀을 끝까지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나도 그날 상황을 보긴 봤지만 우리 반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해결하기 바빠 3반 승민이는 잊어버렸다.


학년을 책임지는 학년 부장으로서 직무유기를 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늘은 적극적으로 내 소임을 다하고 싶어졌다.

일단 교감 선생님과 3반 선생님의 말다툼을 중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내가 오늘 3반 선생님이 승민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간단히 교감 선생님께 설명해 드렸다. 교감 선생님은 힘들어서 전화를 저에게 했는데 말이 서로 꼬인 것 같다라면서 어색한 사과를 하셨다.


3반 선생님도 승민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서 4층에서 교감 선생님이 계신 1층 교무실로 찾아갈 기운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전화로 이러다가 애를 때릴 수도 있어요. 교감 선생님, 엄마랑 면담하려는 데 같이 동석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했지만 중요한 일을 전화로 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말의 순서가 잘못되면서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린 것이다.


승민이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엄마와 상담하고 싶은데 전화도 안 받고 문자로만 이야기해요. 교감 선생님이 엄마랑 면담하는 날 같이 동석해주실 수 있나요? 이러다가 제가 정신 놓아 애를 때릴 수도 있어요.”라고 해야 했다.


교감 선생님도 선생님으로서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 거예요. 애를 때릴 수도 있다거나 정신줄을 놓겠다는 표현은 말이 씨가 되고 행동이 됩니다.”라고 말꼬리부터 잡지 말고,


~ 공개 수업 때도 하나도 공부 안 하던 그 애군요. 지금까지 힘드셨겠어요. 선생님. 오늘 오후에 시간 될 때 내려오셔서 저와 같이 이야기해봐요.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고 말은 조심하면 좋아요. 잘하시다가 선생님들은 말 한마디와 단 한대의 체벌로도 폭력 교사가 될 수도 있으니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해요.”라고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날 교감 선생님과 3반 선생님 그리고 나는 승민이의 행동이 앞으로도 학급에 피해를 줄 때 즉시 전화를 해서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또 비협조적인 승민이 부모님과의 면담을 추진하기로 했다.


나와 교감 선생님은 3반 선생님께 학부모 면담에 앞서 일주일 동안 승민이의 다른 학생 수업권 침해와 선생님들의 교권 침해에 대한 사실을 잘 관찰하고 일자별로 자세히 기록하여 부모님께 전달하시라고 조언했다.


다음 날 3반 선생님은 영어 시간에 어김없이 수업을 방해하기 시작한 승민이를 상담하러 가다가 승민이 어머님께 전화해서 사실을 알렸다. 그랬더니 교문으로 아이를 데리러 오신다고 해서 승민이에게 나가라고 하니 나가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지르다가 어머님이 교실까지 오셔서 데리고 가셨다.


 승민이 어머님은 10분 뒤 문자를 보내왔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다면서 사물함 짐을 가지러 올 시간을 알려달라면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고맙게도 한 줄 인사~

그날 3반이 급식실로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에 승민이 엄마는 승민이 짐을 갖고 가서 다른 학교에 전학 신청을 해 버렸다. 승민이의 인사도 없이.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거의 매일 승민이를 끼고 살았던 담임선생님은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어서 우리 교실을 4번이나 오셨다.      

이제 승민이 때문에 고생 안 하셔도 되는 데 왜 이리 허전해하세요? 잊어버리세요.”


 고무줄 하나를 서로 갖겠다고 잡아당기다가 한쪽에서 가위로 잘라서 갖고 가버린 느낌이에요.”

잘려서 끝만 조금 남은 고무줄..... 그 마음이시구나. 참 진심이었구나. 아이에게.”

오늘은 승민이 엄마가 승민이 문제가 너무 커서 선생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없었을 거예요. 섭섭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고생 많으셨어요. 좀 쉬세요.”     


아이를 내 애처럼 잘해보려고 줄다리기를 부모님과 하다가 부모님께서 줄을 놓아버리는 그런 상황이 학교에는 종종 있다.      


선행학습으로 학교 공부가 너무 지루하다는 아이를 그냥 수업시간에 아무 거나 하게 자유시간을 주라는 부모, 누가 봐도 특수반 대상 학생 아이지만 일반학생들과 수업하게 해달라고 우기는 부모, 아이가 영재 0.001%의 판정을 받아서 문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부모님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더 상처받는 선생님, 따지기 아주 좋아하는 성격인 부모님에게 논리적으로 말이 딸려 말을 못 한 채 당한 느낌의  선생님, 선생님들과 대화 도중 자녀에게 소리소리 지르는 엄마의 날카로운 소리에 심장이 아팠던 선생님…….


이런저런 사연으로 학교와 가정 사이에는 골이 깊어지고 가급적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아이의 상황을 알리지 않는 문화가 팽배해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결국 2학기가 되면 문제 행동 아이들은 친구로부터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 폭력에 연루되거나 보건실에 자주 내려가서 보건 선생님께 위로받거나, 수업 시간에 엎드려서 자거나, 학교에 다니기 싫어하는 등 갖가지 모습으로 상처를 드러낸다. 이렇게 되면 교사도 학부모도 아이의 상태가 심각하니 상담을 더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다.


학부모와의 상담은 피해서도 안 되고 피할 수도 없으니 선생님들이 먼저 용기 있게 시작하면 90%는 성공한다. 내경험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간혹 가다 교사인 우리를 신뢰하지 못하고, 아이의 학교에서의 행동은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를 만나 고전하기도 한다.


우울감에 빠져서 우리가 하는 모든 교육활동이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우리는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자신 있게 전달해야 한다. 호소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님도 우리의 진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대화 속에서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상대방과 진솔한 느낌을 서로 나눈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 속에서도 반드시 서로의 감정은 공유되어야 한다. 이런 일도 밀도 있는 대화 속에서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정서적 성장을 도와주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마음을 열고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아이에게 보여주면, 아이는 부모가 나를 감정적으로 지지하는 오롯한 내 편임을 인지한다. 결국 이런 것들이 자산이 되어 아이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게 된다.

-우동하, 황보미 공저, 『아이의 미래는 부모의 말에서 결정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때론 선생님의 미래도 학부모의 말에서 결정된다는 생각을 했다. 학부모와 선생님의 관계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면서 아이를 공동으로 교육하는 서로에게 같은 편, 내 편이 되어야 한다. 선생님들이 먼저 부모님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대화를 시작하는 물꼬를 트면 좋다.


 부모님들은 ‘선생님’이란 사람들에게 혼난 기억으로 무서워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으니까. 대화의 물꼬만 트이면 선생님과 학부모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찐팬이 되기고 하고 이인삼각 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되기도 한다. 대화할 용기를 내지 못한 선생님과 학부모들은 서로를 미워하다 못해 증오하기도 한다. 학부모와의 갈등이 심해진 선생님들이 마음에 병이 들어 정신과에 가고 병휴직을 하거나 사표를 내며 교직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기 전에 우리 선생님들에겐 우리의 진심을 말할 용기가 말할 필요하다.     


“제가요. 어머님.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조렇게 아이에게 해봤는데 어렵네요. 저는 이런 것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고 ……등등”


제자에게 한 교육을 시시콜콜 부모님들께 말해야 한다. 선생님이 자녀에게 한 모든 교육적 행동을 말했음에도 부모의 반응이 이상하다면 ‘부모 자신에게 화가 났나 보다’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를 향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용기 있게 할 말 하는 선생님>    

-학생 한 명 한 명 안에서 빛나는 ‘빛’ 찾기

-제자들에게 따뜻하게 말하고 ‘고쳐야 하는 행동’을 간결하게 말하기

-친구들에게, 교사에게 하는 문제 행동은부모님께     그날 바로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 담아 알리기

-3번 이상 큰 문제 행동을 하면 부모님 대면 면담하기

-문제 행동이 더 커질 때는 그동안 작성한 사실확인서 갖고 또 부모님 면담하기  


“무관심의 벽을 뚫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침착하고 사려 깊고 단호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선생님, 선생님의 진심 어린 교육내용과 조언을
부모님께 전하는 ‘용기’가 필요해요.  
"더욱더 침착하고,  더욱더 사려 깊고, 단호하게 행동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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