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 Nelson Freire, Riccardo Chailly, Gewandhausorchester Leipzig
- 2006.2.13~18,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Episode.1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어둠이 맞아줍니다.
어둠은 그 공간의 바탕이고, 빛은 그 위에 천천히 스며듭니다.
벽을 가르는 십자가 틈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의 빛이 방 안을 천천히 적시는 순간,
마치 오래 묵힌 마음이 조심스레 언어를 얻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도 제게는 늘 그런 음악입니다.
특히 브라질 출신의 피아니스트 넬슨 프레이레와
이탈리아의 거장 리카르도 샤이, 그리고 멘델스존의 따뜻한 숨결이 묻어있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함께 만든 이 연주는,
어둠을 깨우는 빛의 움직임을 닮았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감정을 감추지도 않은 채, 마음의 구조를 조용히 드러내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Episode.2
이 연주는 한 인간의 세계가 어떻게 무너지고, 또 어떻게 다시 세워졌는지를 소리의 건축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브람스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는 깊은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슈만이 정신적 붕괴로 쓰러졌고, 그 곁을 지키던 클라라를 바라보는 브람스의 마음은 짙은 슬픔과 죄책감,
말할 수 없는 애정으로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협주곡의 첫 장면은 마치 ‘빛의 교회’에서 아직 빛이 닿지 않은 회색 벽을 보는 순간처럼,
거대한 구조물이 금이 가는 소리로 들립니다.
샤이는 이 긴장을 무겁게만 밀어붙이지 않고, 오케스트라의 근육질을 차분하게 정리하며 음들의 윤곽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위에 프레이레가 첫 독주를 올립니다.
Episode.3
그의 음색은 돌처럼 단단하지만 결코 차갑지 않습니다.
부드럽게 깎인 대리석이 손바닥에 닿을 때의 감촉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이 긴 첫 악장은 결국 상처 난 구조물의 버팀목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들립니다.
브람스가 복잡한 감정을 조율하며 다 잃어버린 세계 속에서 다시 설 수 있는 바닥을 찾으려는 몸짓 같습니다.
그리고 음악은 고요하게 2악장으로 이어집니다.
이 부분은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유명한 문장,
“나는 당신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라는 고백과 함께 떠오릅니다.
이 고백은 빛의 교회 십자가 틈으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의 결을 꼭 닮았습니다.
프레이레는 이 악장에서 음 하나하나에 숨을 불어넣듯 조용히 마음을 비춥니다.
그의 건반 터치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면 금이 갈 것 같은 마음을 다루는 사람처럼 섬세합니다.
샤이는 오케스트라를 공기처럼 배치해 피아노의 속삭임을 살려줍니다.
그래서 이 악장을 듣고 있으면,
말로는 끝내 건네지 못한 문장들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빛으로 바뀌어 나오는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초상은 직접적인 그림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며 조심스레 지켜온 마음의 잔상 같은 것입니다.
Episode.4
마지막 악장은 모든 감정의 층위를 지나 다시 구조를 세우는 과정처럼 들립니다.
샤이는 리듬을 단단하게 다져 음악에 새로운 기초를 놓고,
게반트하우스는 독일 악단 특유의 묵직한 음색으로 그 위를 채웁니다.
프레이레는 화려함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깊이와 명료함으로 음을 쌓아 올립니다.
마치 무너진 곳에 다시 견고한 벽돌을 놓듯이, 서두르지 않고 차곡차곡 구조를 완성합니다.
그 결과는 폭발적인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오래된 교회에 아침 빛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처럼 잔잔하면서도 강한 울림으로 남습니다.
Episode.5
‘빛의 교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빛이 처음 들어오는 찰나가 아니라,
빛과 어둠이 한 공간 안에서 함께 머무는 시간입니다.
프레이레와 샤이가 들려주는 이 협주곡도 그렇습니다.
고통과 사랑, 절망과 희망, 슬픔과 위로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는 음악입니다.
그 안에서 브람스는 마침내 오래 숨겨둔 문장을 완성합니다.
“나는 당신의 초상화를, 빛으로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