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집을 나갔다.
마지막 여름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을에 아직 끈끈하게 남아있는 여름의 기운을 씻겨주는 듯했다. 하지만 때아닌 비 때문에 차들은 꽉 막혀있다. 최 군의 마음도 우중충한 날씨와 꽉 막히는 교통 체증처럼 답답했다.
생각보다 평탄한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차곡차곡 취업준비를 하고 있던 그의 계획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누나에게 급하게 온 전화 한 통에 모든 것을 멈춰야 했다. 엄마가 집을 나갔다. 단순히 외출이 아니고 몇 주째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마음은 막힌 차들로 꽉 찬 빨간 불빛처럼 답답했다.
최 군은 엄마가 왜 집을 나갔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집안 사정이 남들과 달랐지만 크게 문제 되는 것은 없었다. 사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부터, 엄마는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과 육아에 전념했다. 이후로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집에 흔한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최 군의 엄마는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월급날과 가족들 생일에는 꼬박꼬박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만의 정교한 규칙을 만들어 집에 들르곤 했다. 최 군이 대학을 가고 누나가 졸업할 무렵에 엄마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집에 다시 들어와 전과 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통화한 엄마에게 이상한 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담담했고 최 군만이 느낄 수 있는 엄마의 특유 목소리 그대로였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잘 지낸다고 대답했으며 그렇게 통화를 끊었다. 별로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집을 나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누군가 던진 물건과 가구들로 사람 사는 집이 아니었다. 최 군의 누나는 한숨을 쉬며 집을 치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방에 술에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며칠 동안 마신 것인지 술병이 그득하게 싸여있었다. 아버지에게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누나가 말리며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는 화가 식지 않은 채로 씩씩거리며 누나와 함께 방을 치웠다. 방을 치우며 물건이 정리되면서 이질감을 느꼈다. 항상 언제나 집에 왔을 때 그를 담담하게 맞아주던 엄마의 온화한 미소와 따뜻함도 느낄 수 없었고, 집안 어느 곳에도 엄마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조금 진정된 말투로 물었지만, 누나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집을 치웠다. 누나의 눈빛에는 불쌍함과 안도감,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누나에 대한 뭔가 알 수 없는 저항감과 엄마의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얼핏 알아챈 그는 더 묻지 않고 집을 계속해서 치웠다. 집을 말끔하게 다 치운 후, 한참을 말 없던 누나는 그에게 조용히 나가자고 말했다.
집 앞에 있는 평상에 우리는 오랜만에 앉았다. 평상에는 나름 우리 가족의 추억이 새겨져 있던 곳이다. 우리 남매는 어린 시절을 이 집에서 쭉 보내왔다. 평상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엄마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엄마는 항상 가족들을 여기서 기다려왔다. 아버지가 오지 않을 때도 혹시나 오지 않을까 해서 집안일을 하면서 기다리고, 내가 공부를 하고 집에 왔을 때도, 누나가 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왔을 때도 항상 평상에 앉아서 기다리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자리에 없다. 유난히 쓸쓸한 느낌과 어색한 느낌에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 한참 동안 말없이 있었다. 사실 그에게 나이 차는 고작 5살에 불과했지만, 그는 항상 누나를 항상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다. 누나는 아버지만큼 어려운 존재였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누나에게는 항상 있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감정을 동생에게 절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본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가만히 있었다. 누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불을 피웠다. 연기로 갈게 한숨을 내쉬며 한참 동안 악문 입을 열었다.
"엄마 바람나서 집 나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