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서진 Nov 09. 2024

누나

또 다른 아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엄마는 왜 바람을 핀 걸까. 왜 집을 나간 걸까. 최 군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말하지 않았다. 속으로 혼자 앓거나 오직 누나에게만 그 사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최 군은 불만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 있는 동안 누나는 자기가 가장인 것처럼 행동하였고 그도 그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했었다. 그래서 누나는 항상 무서웠고 아버지같이 어려웠고 어른스러웠다. 엄마가 바람을 핀 이유를 그가 계속해서 곱씹고 있었을 때 그의 누나는 담배를 마저 피우지 못하고 떨어트려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처음 보는 그녀의 눈물에 어쩔 줄 몰라하며 놀라워하고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자신이 여자친구를 울렸을 때 다독여준 것과 토닥여주었다. 그가 거대하고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누나의 어깨가 오늘에서야 작고 여린 한 여자라는 것을 느꼈다. 한참 동안 운 그녀는 눈물을 그치고 담배로 내뱉지 못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동생 앞에서 울었다는 사실이 뭔가 부끄러웠고, 그는 자신이 누나를 달래던 것이 매우 어색했다. 둘은 한참 동안 미적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어색함을 잊어버리기 위해 담배를 찾았지만, 담뱃갑은 텅 비어있었다. 마지막 돛대는 마치 그녀의 부끄러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불이 꺼지지 않고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개새끼”


    그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거친 말에 깜짝 놀랐다. 애꿎은 담배를 발로 비비며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굴 말하는 거야?”

“누구긴 누구야…. 아빠 말하는 거지.”


    그는 두 눈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누나가 맞나 싶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상이 당연하여졌을 때 그녀는 엄마와 크게 한바탕 싸운 적이 있었다. 누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한 반항이었고 결국 엄마를 울렸다. 엄마는 유난히 서럽게 울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두둔하고 불쌍하다고 말했다. 누나는 방문을 쾅 닫은 채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둘은 생각보다 빨리 화해했다. 그리고 누나는 아버지에 대해 절대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 집에 들어올 때마다 항상 웃으며 딸이 내뿜을 수 있는 특유의 애교로 반겨줬다. 그는 그것이 가식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몰랐지만 적어도 누나가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화목한 가족이라는 꾸며나가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바람나서 완전히 집 나간 거야?”


누나는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잘 모르겠어. 엄마가 갑자기 왜 그러는 건지.”

“전화는 안 받고?”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몰라.”


    누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늘따라 모두 의외였다. 어쩌면 누나는 엄마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는 듯이 마을 내뱉었다.


“난 아버지가 집에 들어왔을 때 정말 맘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별말 없었으니까 이해했어. 하지만 오늘 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

“하지만 엄마도… 난 엄마도 이해가 안 돼….”


    누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평상에 주저앉아서 그대로 울어버렸다. 최 군은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마치 누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누나를 따라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것을 꾹 참으며 휴대전화기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가 전화했다고 좋아하면서 받았을 전화였을 텐데, 엄마는 받지 않았다. 두세 통 더 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오늘따라 달이 밝아서 누나의 눈물이 더욱 반짝여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