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와 엄마
세상의 대부분 일은 생각을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뜻밖이라고 생각한 일들도 되돌아보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 군에게는 엄마의 바람은 충격적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기억하고 있었던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다.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자상한 현모양처였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였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과거와 엄마의 모습이 앞뒤가 맞지 않게 되자 그의 머릿속은 뒤죽박죽 섞여버렸다. 오랜만에 온 집은 캄캄한 밤에 짙은 그림자가 져 있었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무도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이 알고 있던 집보다 커 보였다. 그리고 엄마가 없어 유난히 쓸쓸하고 무거웠다. 혹시나 누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곳저곳 살펴봤지만, 술 취한 아버지만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켰다. 빛이 환하게 비치면서 방의 쓸쓸함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애꿎은 방문을 열어젖힌 게 오히려 외로움을 증폭시키기만 했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는 아예 꺼져있었다. 계속되는 외로움이 그를 갉아먹는 듯했다. 안 되겠다 싶어 오랜만에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대학을 들어가 자취를 선택한 이후로 몇 년 동안 쓰지 않는 방이었다.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고 난 뒤 자신의 방을 쓰고 있지 않을까 해서 들어갔다. 놀랍게도 방에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자신이 쓰던 물건들은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마치 그를 기다리는 듯이. 방은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시간이 멈춰있었다. 그는 자신이 쓰던 책상을 한참 동안 쓰다듬었다. 타지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이렇게 변했는데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엄마가 방을 청소하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울컥했다.
엄마가 곁에 있을 땐 잊고 있었던 일들과 추억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절은 그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엄마 속을 썩이지 않았는데 마치 반항하는 마냥 고등학교 3학년 막바지에 그랬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 방은 자신의 두 모습이 뒤섞여있었다. 반듯하고 속을 썩이지 않은 착한 아들과 알 수 없는 반항심에 분노하는 아들의 모습이. 책상에서 착실하게 공부를 하며 꽂혀 있는 다 푼 학습지와 반항심에 어긋나 즐겼던 화투와 음악 잡지, 음반들이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어렴풋이 떠오른 기억에는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화투를 치다 걸렸을 때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가셨다. 그리고 친구들이 집에 가 가고 나서 딱 한 마디를 하셨다.
“담배가 몸에 안 좋다고 하는데 피지 마라.”
철없이 그는 아빠도 누나도 피는데 자신이 왜 안 되느냐고 반항했다. 어머니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푹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다.
“두 사람으로 충분하니까.”
엄마는 할 말을 다 했는지 아무 말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그는 그때 이후로 담배를 끊었고 손에 대지 않았다. 물론 술을 마시고 지속해서 반항했다. 성적은 날로 떨어져 가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불량함이 최고조를 찍었을 때 결국 누나에게 제지당하며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날 방에서 친구들은 담배를 피우고 같이 술을 마시면서 음악을 엄청나게 크게 틀고 있었다. 엄마는 참다못해 방문을 열어 그만하라고 소리 질렀지만 그의 기억으로 비웃었던 거로 기억한다. 몇 분 안 있어 누나가 집에 도착했다. 그와 친구들은 죽지 않을 만큼 누나에게 맞았다. 원래 누나가 그를 때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항상 말렸던 엄마는 그날만큼 말리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돌이켜보면 엄마의 무기는 누나였다. 마음대로 안 되는 나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무기. 그것을 누구보다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았고, 마치 당근과 채찍과 같은 존재가 어떻게 보면 누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때로는 매가 되기도 하고, 그것을 막으면서 당근을 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최 군이 생각했을 때 엄마가 그를 정말 아들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반항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엄마와 지내는 것을 보고 들을 때면 엄마가 자신이 엄마와 아들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언제나 항상 그를 때리지도 말리지도 않았고 항상 뭐든지 받아주었다. 잘못한 것이 있어도 크게 혼내지 않았고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는 소리뿐이었다.
추억에 한창 젖어 있다가 다시 불쑥 튀어나온 엄마 걱정에 그는 다시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결국 추억은 기억 끝에 후회로 변해버렸다. 이럴 거면 자주 찾아뵐걸, 전화라도 자주 드릴걸, 아니 엄마랑 이야기라도 많이 해서 아버지가 그러고 다니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 떠올랐다.
엄마가 그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가 엄마에게 화낼 때도, 그가 수능을 망쳐서 재수할 때도, 항상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죄인처럼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가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전화를 걸 때 나오는 통화연결음이 결국에는 끊어져 받을 수 없다는 음성이 나와 마치 나와 엄마의 사이를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