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다시 마주 앉은 밥상

by 한서진

밥을 먹으면서,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것도 아니고 단지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엄마의 시간을 조금 나눠 갖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가 엄마에게 마지막 질문을 한 이유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 엄마의 이야기가 쌓여있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던 엄마의 일상. 엄마가 곁에 있었을 땐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사소하고 어느 땐 보잘것없는 엄마의 일상과 이야기들. 만약 지금 아니면 듣지 못할 이야기들을 지금에서야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항상 같았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바뀐 것 하나 없이 엄마는 엄마였다. 그저 그런 모습을 항상 다르게 봐왔던 것은 그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깨운 것은 오한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체 앨범이 널브러져 있었다. 선명한 꿈을 꾸었지만, 최 군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고 엄마를 만났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앨범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나왔을 때, 아침 해가 서서히 뜨고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온몸이 뻐근했다. 부엌 쪽에서 도마 소리와 무언가를 끓이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어색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곧 진한 라면 냄새가 온 집 안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라면을 끓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누군가 벨 소리를 눌렀다. 최 군은 어제 먼저 간 누나인 줄 알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엄마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나 왔다잉."


엄마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편하게 말했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최 군은 엄마가 왔느냐고, 잘 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버지 눈치가 보여 가만히 있었다. 현관에 흐르는 긴장감이 손에 잡힐 듯했다. 아버지는 누나가 온 줄 알고 부엌에서 나와 엄마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엄마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었고, 엄마는 당당히 집에 들어왔다.


“아침 댓바람부터 라면을 처먹고 있어!”


엄마는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다. 아버지는 호통을 치며 대답했다.


“… 뭘 잘했다고 이 여편네가!”


하지만 엄마는 아버지의 호통을 끊어 먹었다.


“지랄하고 있네. 기다려 내가 밥 해줄 테니까.”


엄마는 성큼성큼 들어와 부엌에 가서 요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엄마를 쳐다보았지만, 너무나 뻔뻔함 때문인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소파에 앉아서 밥을 기다렸다. 최 군도 아버지 옆에 가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집을 뒤덮고 라면 냄새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엄마가 해주는 요리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집안은 금세 엄마 냄새로 가득 찼다. 엄마는 거실에 있는 커다란 탁자에 자신이 만든 음식을 하나하나 놓기 시작했다. 최 군도 모르게 오랜만에 본 엄마의 음식에 침을 꼴깍 삼키며 작게나마 탄성을 질렀다. 혼자 먹는 밥이 아닌 가족과 오랜만에 먹는 밥이었다. 하지만 자리는 얼마 안 있어 금방 불편해졌다. 밥상에서 항상 떠들고 즐겁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바람을 피우고 들어와 따뜻한 밥을 해주고 가족들과 함께 먹었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조용히 식사할 뿐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깬 것은 아버지였다.


“여보.”


엄마는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고 말도 안 하고 밥을 먹었다.


“주희 엄마.”


엄마는 숟가락을 새게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내 귀 안 묵었다. 대답해라.”

“왜 그랬나?”

“뭐가?”

“대체 어느 놈이랑 바람이 났는데 금세 들어오는감?”


엄마는 큰소리가 나게 숟가락을 놨다. 식탁이 뒤엎어지나 하는 마음에 아버지도 깜짝 놀라고 그도 엄마의 눈치를 살펴봤다.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 동안 아무 말 없다가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뭐라는지 안 들리네! 크게 말해봐!”


아버지는 죄인을 추궁하는 것처럼 성을 냈지만 엄마는 잘못한 것 없다는 듯이 대차게 대답했다.


“네가 먼저 바람 펴서 내도 함 그래 봤다! 불만 있나잉?!”


아버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엄마도 고개를 숙이며 엉엉 울며 봇물 터지듯이 이야 했다.


“바람 펴서 너도 똑같이 함 느껴보라 했다. 내 마음고생 해본 거 똑같이 당해보라고! 네 집 안 들어올 때마다 내도 힘들었고 바람피우는 것도 알고 있는데 참는 거지를 맞은 거 똑같이 당해보라고!”


아버지는 오히려 자신이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엄마의 꾸중을 계속해서 들었다. 이제는 누가 잘못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다.


“근데…근데 말이여, 이게 뭔 지랄인가 할 게 못 되더라고…. 그래서 다시 돌아왔지.”

“지윤아”


아버지는 한참을 말을 못 하다가 엄마가 울음을 서서히 그치자 겨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엄마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다음에 나온 말은 더 놀라웠다.


"내가 잘못했으니 집 나가지 마소. 바람도 피우지 말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평생 한 번도 굽히지 않았던 그의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다.

"지금까지 내가 한 짓들이... 용서받기는 글렀겠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아버지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최 군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놀란 동공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까지 최 군이 알고 있는 아버지는 잘못했다는 말을, 표현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눈물은 그의 사과가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엄마에게 그리고 최 군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여자를 달래주기 위해 엄마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달래주기 시작했다. 엄마는 울면서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아버지는 괜찮다면서 자신이 더 미안하다며 토닥여주었다. 엄마는 과거의 아버지를, 아버지는 지금의 엄마를 용서해 주었다.


분명 아직은 가족 간에 찢어진 상처가 아물려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분명 누나는 엄마도 아버지도 용서하지 못할 것이고, 엄마와 아버지가 서로를 완전히 용서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최 군도 자신의 마음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런 어색하고 우울한 분위기에서 앨범에서 본 한 사진이 생각났다. 엄마와 아버지가 젊은 시절 만난 한 장의 흑백사진. 허름한 골목길 어귀에서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스무 살의 엄마와,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유일한 가족사진. 누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교복을 입은 누나의 양 옆으로 엄마 아버지가 서 있고, 아직 어린 최 군은 앞에서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그 사진이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데웠다.




단편소설 <가족사진>은 여기서 마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 토요일, 후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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