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밥상 2
그는 엄마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눴다. 평소보단 진지하고 깊은 얘기들이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가 바라본 엄마에 대해서 풀어나갔고 엄마는 그것에 대해 대답해 줬다. 그의 성격은 궁금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물어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바라본 엄마, 그가 알고 있던 엄마에 대해서 모두 물어보고 엄마에게 대답을 요구하며 담소를 이어나갔다. 그는 지금이 아니면 다신 물어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성급하고 경솔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상대가 엄마라면 말이다. 엄마는 요리하면서 대답을 할 때는 그를 바라보고 이야기해 줬다. 앨범에서 본 엄마가 전부는 아니었다. 엄마는 맵시꾼이고 신여성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를 함부로 만나고 다닌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때 시절에는 남자를 많이 만나고 다니면 흉보는 세상이었지만 엄마는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진심으로 모두 사랑했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저 운명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나서 진정한 사랑과 운명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대답이 생각보다 뻔했다. 그러면서도 엄마도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버지는 엄마의 운명 상대이자 진정한 사랑이야?”
엄마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남자들은 다 똑같아. 누굴 만나든 간에 어차피 결과는 같았을 텐데!”
그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래도 좋은 게 하나 있다.”
“뭔데?”
“너희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거.”
추억은 때로 흐릿한 물안개처럼 희미하지만, 때로는 또렷한 창유리처럼 선명하다. 최 군의 기억 속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이번 대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질문들이 서서히 솟구치고 있었다. 그는 엄마의 손길을 따라 부엌에서 그녀의 움직임을 천천히 관찰했다. 요리하는 손길 하나하나가 그의 어린 시절을 더듬는 듯했다.
“엄마.”
“왜?”
“왜 나를 때리거나 혼내지 않았어?”
“뭐라고?”
“왜 내가 잘못했을 때나 혼나야 하는 상황에 혼내지 않았느냐고. 돌이켜보니까 내가 혼난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
엄마는 코웃음 치며 별거 다 물어본다는 듯이 어이없어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그냥, 생각해 보면 항상 나를 혼내는 건 엄마도 아빠도 아니고 누나였으니까.”
엄마는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흘겨봤다.
“네가 때릴 구석이 어디 있느냐. 그리고 나는 너희를 때리기 싫었다. 그래서 너 누나가 나 대신 때린 거지 뭐.”
엄마의 입가에 비밀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최 군의 기억 속 누나는 언제나 그를 대신해 징계의 채찍을 대신했다. 엄마의 대답은 마치 작은 농담 같았지만, 어떤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지만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질문을 멈추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 엄마한테 물어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그의 호기심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마치 끝없는 미로 같은 엄마의 과거를 향해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음 질문을 꺼냈다.
"엄마, 그때 당신이 만난 남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어?"
엄마의 손길이 잠시 멈췄다. 엄마의 눈빛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추억의 그림자가 엄마의 얼굴을 스치듯 스쳤다. 그러고 이내 퉁명스럽게 물어봤다.
"그건 와?"
"그저 엄마를 더 알고 싶어서. 엄마가 어떤 여자였는지, 어떤 감정들을 느꼈는지…."
엄마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의 느낌으로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다가 엄마는 최 군을 살펴보더니 웃으며 이야기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지. 때론 후회하고, 때론 만족하고.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네가 어떤 선택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겠지. 그리고 엄마는 너희 아빠를 선택했고, 너희를 선택했고 그게 전부여."
이 짧은 대화 속에 엄마의 온전한 인생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최 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게 필요한 건 질문이 아니라 그저 엄마와 함께 있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훌쩍 거리며 밥을 오물거렸다. 엄마는 못 본 척 아무 말하지 않고 수저를 들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따뜻하게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