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내 앞에 앉은 남자는 파란색 다이어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는 다이어리를 펼쳐 무언가를 열심히 적습니다.
입가에는 아주 희미하고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습니다.
나는 그의 생각을 읽어보려 애를 씁니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편지를 쓰거나,
내일의 설레는 계획을 세우고 있겠지요.
그의 머릿속은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해 보입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습니다.
남자는 잠시 펜을 멈추고 창밖을 봅니다.
참으로 평온한 오후의 풍경입니다.
그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책상 위에 다이어리가 남아 있습니다.
나는 일어섰습니다.
슬쩍 들여다봤습니다.
오늘 날짜.
내 옷차림.
그리고 한 문장.
'14시 30분, 타겟이 내 다이어리에 관심을 보임. 이제 뒤를 쫓아 제거할 시간이다.'
심장이 멎었습니다.
카페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골목으로 꺾었습니다.
또 꺾었습니다.
숨이 찼습니다.
발소리가 가까워졌습니다.
막다른 길이었습니다.
나는 돌아섰습니다.
그가 내 앞에 서 있었습니다.
손에는 파란색 다이어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왜 도망쳐요?"
그가 웃었습니다.
그가 다이어리를 펼쳤습니다.
"당신이 읽은 건 소설 초안이에요."
나는 멍해졌습니다.
"스릴러 쓰는 중이거든요. 카페에서 관찰한 사람을 캐릭터로 넣으려고요."
그가 더 바짝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진짜 궁금한 게 있어요."
그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왜 남의 다이어리를 몰래 봤죠?"
어느새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가 내 옷소매를 잡았습니다.
칼이 내 소매에 닿았습니다.
실밥 하나가 툭 끊어집니다.
"아까 카페 의자에 걸려 뜯어졌더군요."
그는 칼을 접어 주머니에 다시 넣었습니다.
그가 파란 다이어리를 건넸습니다.
"다 못 읽으셨죠? 뒷장도 보세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넘겼습니다.
아까 본 무서운 문장 바로 아래, 괄호가 보였습니다.
(작가 지망생의 헛된 상상: 101번째 퇴고 중)
그 밑에는 진짜 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카페에서 내 소설을 훔쳐본 사람을 만났다.'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용기 내서 말을 걸어보고 싶다.'
그가 수줍게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사실 전 너무 소심해요."
"누가 제 글에 관심을 둔 게 처음이라서요."
그의 눈에 다시 따뜻한 파도가 일렁였습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같이 커피 한 잔 더 할까요?"
골목 끝에서 불어온 바람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카페로 향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파란 다이어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제거 대상' 대신 '새로운 친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