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편안히 사는 법
어릴 적 내가 상상한 '어른'은 슈퍼히어로였다.
세상 모든 질문에 척척 답하고, 어떤 갈림길에서도 지도처럼 가장 현명한 길을 가리키는 존재.
곤란한 일 따위는 겪지 않을 것 같은, 정말 전지전능한 사람이었다.
근데 막상 그 '어른'의 나이가 되어보니, 내 삶은 정답보다 물음표로 가득하고,
아는 것보단 모르는 것투성이다. 젠장, 난 슈퍼히어로가 아니었어.
'모른다'는 세 글자, 왜 그렇게 어려울까?
이상하게도 우린 '모른다'는 세 글자를 입에 올리는 데 지독히 인색하다.
나이와 직급이 높아질수록 그 인색함은 더 심해진다.
마치 모르는 게 큰 흠이라도 되는 양 군다.
중요한 회의 시간, 처음 듣는 전문 용어가 오가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척한다.
누군가 요즘 유행하는 책이나 영화에 대해 물으면, 이미 다 꿰고 있다는 듯 시크한 표정을 짓는다.
왜?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내 가치가 떨어질까 봐, 그동안 쌓아온 체면이 구겨질까 봐 두려워서다.
아는 척하는 게 쿨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게 우린 스스로를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감옥에 가둔다.
그 감옥의 벽은 타인이 인정해 주는 것을 양분으로 먹고 자라난 자존심으로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실은 새로운 지혜 한 줄기 들어올 틈 없는 '무지'의 벽일 뿐이다.
그 안에서 우린 안전함을 느끼는 대신, 성장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버린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
내비게이션 vs. 20년 경력 운전자
진정한 어른의 품격은 '많이 아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가끔 운전을 하다 보면 이런 사람이 있다.
내비게이션이 더 빠른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데도,
"내가 이 동네에서만 20년을 운전했어!"라며 익숙한 길을 고집하는 사람.
그는 자신의 과거 경험이라는 감옥에 갇혀 더 나은 현재를 놓치고 만다. 에휴, 꼰대 마인드다.
반면 이런 사람은 어떤가. "어라, 이쪽에 길이 새로 났네? 내가 알던 게 전부가 아니었구나."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핸들을 돌리는 사람.
그는 고집 대신 유연함을 택했고, 그 덕분에 더 빠르고 편안한 길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순간, 우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문을 열게 되는 거다.
솔직히 이게 훨씬 멋있다.
'내가 틀렸다'는 용기
'내가 틀렸다'는 말은 패배 선언이 아니다.
더 나은 나를 향한 가장 용감한 첫걸음이다.
늘 끓이던 방식보다 친구가 알려준 레시피로 끓인 김치찌개가 더 맛있다는 걸 인정하는 소박한 겸손함.
엄마가 끓여준 것보다 친구 김치찌개가 더 맛있다니, 이 정도면 인정할 만하다.
자녀와 언쟁을 벌인 뒤,
"아빠가 미처 거기까진 생각 못 했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며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따뜻한 용기.
이런 게 바로 나이와 상관없이 한 사람을 진짜 '어른'으로 만드는 품격이다.
안다고 착각했던 낡은 지식을 깨끗이 비워내야만,
그 빈자리에 더 향기롭고 지혜로운 것들이 채워질 수 있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건, 진리다.
지적인 겸손, 실천하는 지혜
하지만 잘 못을 인정하는데만 그친다면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고치는 사람'이 될 때, 우린 비로소 어른의 경지에 들어선다.
스마트폰 사용이 서툴다는 걸 인정한 뒤, "손주야, 이 기능 좀 다시 알려주렴"하며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할머니의 반짝이는 눈빛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의 편협한 주장이 틀렸음을 깨달은 뒤, 다음부터는 상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려 애쓰는
태도는 또 얼마나 멋진가.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지적인 겸손'이라면, 그것을 고쳐나가는 것은 '실천하는 지혜'다.
이 두 가지가 만날 때, 우린 그저 나이만 먹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근사한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머릿속에 지식의 양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끊임없이 깨달으며, 어제의 나를 기꺼이 수정해 나가는 태도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사람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든 "내가 틀릴 수 있다"라고 인정하며 새로운 것을 배울 준비가 된 사람이다.
오늘,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혹은 새로운 무언가를 마주하다가
막히는 순간이 온다면 더는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당당하게 말하자.
"아, 그건 잘 몰랐네. 자세히 좀 알려줄래?"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내가 틀렸어."
그 솔직한 한마디가, 어제의 나보다 훨씬 더 크고 멋진 어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