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야근각?"
오후 일곱 시, 폰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발신자는 엄마.
하트 이모티콘 뒤에 따라붙는 글자. '별일 없지?'.
단출하지만,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 마법의 글자였다.
젠장, 오늘도 야근인데.
팀장님은 칼퇴하고 홀로 사무실에서 정신은 저만치 집어던지고
영혼이 탈탈 털린 채 마우스만 이리저리 몇 시간째.
팀 프로젝트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다.
한 손으로는 샌드위치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우스를 꾹 쥐고 화면 속 글자들을 노려봤다.
모니터 불빛이 눈알을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으, 드디어 끝이 보인다.
새벽 한 시, 겨우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지하철 끊긴 지 오래. 택시를 잡으려 폰을 들었는데, 또 엄마한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힘든 일은 없고?"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엔 뭔가 촉촉한 기분이었다.
'응, 없어. 괜찮아.'라고 답장을 보내려다 말고 멈칫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지금 당장 쓰러져 자고 싶다고!
하지만 이모티콘 하나 없이 툭 던진 저 문장 한마디가 오늘 내 고단함을 싹 씻어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침대에 쓰러졌다.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젠장, 구두 신고 하루 종일 뛰어다녔더니 발이 남아나질 않네.
잠이 솔솔 오는데, 누군가 내 발을 조심스레 주무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 엄마다.
"고생 많았지."
엄마는 말없이 내 발을 주물러줬다. 그 손길에서 묘한 평온함이 밀려왔다.
'괜찮아.' 깊은 위로가 발끝에서부터 전해지는 듯했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엄마의 손길은 마법 같았다. 아픈 발이 녹아내리는 듯 시원했다.
어릴 적, 내가 열이 날 때마다 엄마가 내 이마에 얹어주던 그 손길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세상의 모든 갑옷을 내려놓고 무장해제되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햇살이 방 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커튼이 활짝 열려 있었다.
옆을 보니 엄마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놓고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따뜻할 때 마셔."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나는 침대에 기대앉아 따뜻한 차를 마셨다. 차 향기가 온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어젯밤, 엄마가 내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덮어줬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이 작은 배려들이 모여, 나를 감싸는 따뜻한 울타리가 되고 있었다.
문득, 화장대 위에 세워진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언제나 받기만 하고, 투정만 부리는 딸은 아니었을까?
나는 엄마의 묵직한 가방에 햇반 하나 넣어준 적 있었나?
엄마가 힘들어할 때, 위로의 문자 한 통이라도 보낸 적 있었나?
엄마의 지친 발을 주물러 준 적은?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은 때로 나를 외롭게 만들었지만,
사랑을 주고 싶다는 다짐은 나를 더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나는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햇반을 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방으로 향했다. 엄마는 침대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엄마, 혹시 밤에 배고플까 봐."
나는 웃으며 햇반을 엄마 옆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엄마는 나를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아 엄마의 발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리곤 어제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엄지손가락으로 엄마의 발바닥을 천천히 눌러줬다.
엄마의 발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내 손끝에서 따뜻한 온기가 엄마에게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의 완성은,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의 배낭에 햇반 하나를 넣어주는 마음으로,
잠든 엄마의 이불을 한 번 더 만져주고 싶어지는 밤이다.
밤공기가 제법 차가웠지만, 내 마음은 꽤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