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줄 서기

by 이로

며칠 전, 낯선 풍경 속에 발을 디뎠다.

친한 형의 장례식, 그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묘지 언저리를 홀로 걸었다.

스산함? 음, 으스스한 기분은 1도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묘지라니, 왠지 좀 그럴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묘지에는 세상에서 가장 질서 정연한 줄이 있었다.

태어난 곳도, 살아온 스토리도, 심지어 떠난 이유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누가 먼저 가겠다고 남을 밀치지도, 더 좋은 자리 차지하겠다고 옥신각신하지도 않았다.

그냥 자기 차례가 되어 주어진 자리에 누웠을 뿐.

그 절대적인 질서 앞에 서니, 내 안의 조바심이 한풀 꺾이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매일 줄을 선다.

핫플 맛집 앞에서, 은행 창구 앞에서, 출근길 지옥철 승강장에서.

조금이라도 앞서가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누가 새치기라도 할까 봐 눈에 레이저를 쏜다.

진짜 피곤한 삶이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경주에서도 마찬가지.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가지려고 발버둥 친다.

옆 사람을 라이벌로 보고, 뒤처지면 어쩌나 불안에 떤다.

다들 다른 출발선에서 각자의 레이스를 펼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의식하고 비교하며 스스로를 들볶는다.

이러다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닌가, 늘 그런 강박에 시달린다.


근데 묘비들은 말없이 가르쳐줬다.

그 모든 경쟁과 조바심의 끝에는 결국 아무도 피할 수 없는 평등한 ‘마지막 줄’이 있다는 것을.

묘비 하나하나는 한 권의 책 같았다.

이름 석 자와 짧은 생존 기간 몇 글자 안에

한 사람의 희로애락,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이 모두 담겨 있었다.

옆에 누운 사람이 재벌이었는지, 유명한 학자였는지,

아니면 그냥 평범한 이웃이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생전 어떤 타이틀을 가졌든, 얼마나 많은 것을 쌓았든,

이곳에서는 모두 똑같은 크기의 땅을 차지하고 이름 석 자로 남을 뿐이었다.

세상의 모든 계급장, 명품, 트로피를 내려놓고 비로소 얻게 되는 완전한 평화.

그래서 묘비 사이를 걷는 건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삶을 생각하는 시간이 된다.

어차피 우리 모두 새치기할 수 없는 줄에 서서 각자의 차례를 기다리는 존재들이라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원 지하철에서 내 어깨를 퍽 치고 가는 사람도,

회사에서 나를 질투 나게 만드는 동료도,

결국 나와 똑같은 길 위의 순례자일 뿐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자기만의 힘겨운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밉고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잠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곳을 향해 가는 동행이니까.

뭐, 인생 별거 있나? 다들 대충 비슷하게 살다 가는 거지.

묘비 앞에서 깨닫는 이 평등과 평화를 이 땅 위에서 조금이라도 앞당겨 실천하며 살 수는 없을까.

서로를 비교하며 안달하는 대신, 각자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존중해 주는 거다.

‘너는 그랬구나, 나는 이랬어’라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때로는 어깨를 토닥여주는 여유를 갖는 것.


결국 잘 산다는 건, ‘죽음’이라는 마지막 평등을 기억하며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더 너그럽고, 더 솔직하고, 더 따뜻해지는 것 아닐까.

묘비 사이의 고요한 산책은 늘 내게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야, 줄 서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네 이야기나 잘 써 내려가. 우리 모두 결국 평화로워질 테니. "

차갑지만 쨍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가 길게 내쉬는 숨과 함께 다시 빠져나갔다.

내 삶의 줄도 언젠가 저기 어딘가에 닿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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