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나는 대단한 결심을 했다.
'그래, 오늘부터 조깅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
어젯밤 유튜브에서 본 '갓생 사는 법' 영상 때문일까. 폼을 잡고 힘차게 아파트를 나섰다.
한 10분쯤 달렸을까? 세상에, 눈앞에 나타난 건 벽돌이었다. 아니, 벽돌이 왜 거기에?
피할 새도 없이 발이 걸려 넘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멋지게 공중제비를 돌다 착지 실패.
"젠장!"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무릎이 욱신거렸다. 절뚝이며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따끔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소파에 쓰러졌다. 아, 빌어먹을 조깅.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작은 통증이 내 머릿속에 이상한 스위치를 켰다.
'야, 네 몸, 꽤 소중한 거였네?' 평소엔 투덜대기 바빴던 이 몸뚱이가 갑자기 감사하게 느껴지는 기적.
세상은 눈으로, 마음은 눈에 담는 것으로
두 눈. 이게 없으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 창밖을 봐. 붉게 물든 단풍잎이 보이니?
가을이 자기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중이다.
저 쨍한 색깔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계절의 끝을 알아차릴까.
햇살 한 줌이 스며드는 다정함은 또 어떻고.
그게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어줄 수 있었을까.
작년 가을, 계곡에 갔을 때였다.
시냇물 위에서 윤슬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휴대폰을 꺼내 들었는데, 굳이 찍을 필요가 없었다.
그 눈부신 풍경은 그냥 내 마음에 고스란히 담겼다.
와, 진짜 이쁘다. 했던 그 순간이 내 갤러리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저장된 거다.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작은 등불. 내 눈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기 위해 존재하는 거였다.
말은 마음을 잇는 다리
그리고 입. 때로는 주둥이가 방정이라고, 쓸데없는 말 한마디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흑역사 오억 개쯤 생산했지. 하지만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같은 진심 가득한 말들이 있기에,
우리 세상은 온기로 가득 찬다.
친구가 그러더라. 아버지가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하셨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아버지가 아마 수만 번의 눈빛과 행동으로 '사랑한다'라고 속삭였을 거라고.
그래도 말이다, 그 말을 직접 들었다면 어땠을까?
친구 마음속에 얼마나 더 큰 꽃이 피었을까? 생각만 해도 뭉클하다.
중요한 말은 아끼고 쟁여두는 게 아니다. 그냥 지르는 거다,
마음을 다해. 침묵이 때로 금보다 값질 때도 있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도 한다.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게 우리 아니던가.
세상으로 향하는 두 발
두 발. 이건 또 얼마나 가슴 벅찬 아이템인가.
발이 있기에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용감하게 발을 내딛는다.
첫 출근길의 그 두근거림. 희망이라는 제목의 서곡이었다.
썸남 만나러 가는 설레는 발걸음. 행복이라는 전주곡이었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지만, 그 설렘은 진짜였다.)
가끔은 훌쩍 떠난 여행길에서 개고생도 한다. '내가 왜 왔지?' 싶은 순간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낯섦과 불편함마저 시간이 지나면 반짝이는 추억이 된다.
우리는 그 모든 경험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쥐뿔도 모르던 세상에 대해 조금은 더 지혜로워진다.
내 두 발은 나를 어디든 데려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친구다. 심지어 불평도 안 해.
젊은 날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문득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이 몸을 아낌없이 사용했던 그 시절의 내가. 눈이 있어 아름다운 것을 실컷 보았고, 입이 있어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했고, 두 발이 있어 원하는 곳으로 힘껏 달려갔다.
일요일 아침 늦잠. 그건 게으름이 아니었다. 다음 한 주를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하는 달콤한 휴식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망설였던 순간들은? 그건 쫄보라서가 아니라, 더 나은 때를 기다리는 현명함이었다.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이 기분, 아주 짜릿하다.
이제 와서 과거의 나를 다그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야, 젊은 날의 나야. 넘어져가며 용감하게 달려줘서 진짜 고마워! 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잖아."
중요한 건 언젠가 심장이 멎을 거라는 슬픈 사실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가슴속에서 힘차게 뛰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심장은 오늘도 뛴다. 저녁노을이 불타는 걸 볼 때,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에서 최애곡이 나올 때,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벅차게 뛰어오른다.
가끔 찾아오는 통증은? '야, 잠시 쉬어라' 하는 다정한 신호다.
병원 예약? 그건 내 몸을 더 아껴주겠다는 따뜻한 다짐이다.
이 심장은 내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 연주해 주는 충실한 드러머다.
내 몸이라는 악기를 더 사랑하고 소중히 다루게 하는 고마운 지휘자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쓰고, 느끼고, 표현하고, 경험하기 위해서.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이 몸, 아끼지 말고 기꺼이, 그리고 마음껏 써보는 건 어떨까?
다음 생엔 어떤 몸으로 태어날지 아무도 모르잖아.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 몸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