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빠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본 적 없지만, 그래서 더 선명하게 나를 쿡쿡 찔러대는 질문.
“엄마, 나 때문에 뭘 포기했어?”
아마 평생 물어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질문은 너무 무겁고, 어쩌면 잔인하기까지 하니까.
엄마의 인생 한가운데에 내가 들어섬으로써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의 목록을 듣게 될까 봐 두렵다.
화려했을지도 모르는 엄마의 젊음, 펼쳐보고 싶었던 꿈,
혹은 그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누리는 고요한 오후 같은 것들.
그 목록을 확인하는 순간, 나의 존재가 엄마의 삶에 빚을 졌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될까 봐, 나는 끝내 비겁한 침묵을 택했다.
대신 나는 엄마의 모습을 훔쳐보며 답을 상상하곤 했다.
한때는 노래에 소질이 있었다던 엄마가 설거지를 하며 흥얼거리던 콧노래에서,
재봉틀을 돌리며 내 옷을 만들던 섬세한 손끝에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깊은 눈빛에서 나는 엄마의 잃어버린 세계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너 때문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피곤한 어깨 위에서 그 말의 무게를 느끼며 자랐다.
그 침묵이 더 아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쏜살같이 달려와 내 품에 안기는 아이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순간,
문득 섬광처럼 내가 품었던 그 질문이 떠오른다.
이제는 나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볼까. 나 역시 아이가 생긴 후로 포기한 것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금요일 밤, 아무 계획 없이 떠나던 즉흥적인 여행? 꿈도 못 꿀 일이지.
주말 아침, 온전히 나만을 위해 가졌던 차 한 잔의 여유? 그건 다른 세상 이야기.
극장에서 새로 개봉한 영화를 제때 챙겨보는 소소한 기쁨도 사치였다.
때로는 경력에 대한 야심이나 더 높은 곳을 향한 욕심 같은,
제법 근사해 보이는 것들도 슬그머니 내려놓아야 했다. 뭐, 어쩌겠어.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아이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나의 시간, 나의 공간, 나의 관심사는 온통 아이에게로 향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에게 '너 때문에 엄마는 많은 걸 포기했단다'라고,
내가 그토록 듣기 두려워했던 그 말을 똑같이 대물림해야 하는 걸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한참을 생각했다.
포기. 이 단어가 정말 맞는 걸까.
'포기'라는 말에는 상실과 아쉬움, 그리고 어쩔 수 없었다는 체념의 뉘앙스가 짙게 배어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며 겪는 이 감정이 과연 그런 종류의 것일까. 아니었다.
나는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 정확히는 '교환'에 가깝다.
나는 심야 영화의 자유를 포기한 게 아니라, 아이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는 경이로움과 교환했다.
나는 조용한 아침의 차 한 잔을 포기한 게 아니라,
"엄마!" 하고 나를 부르는 세상 가장 사랑스러운 목소리와 교환했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의 성공을 포기한 게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확실한 행복과 교환했다.
내 인생의 가치 순위가 바뀐 것이다.
이전에는 나 자신을 채우는 것들이 1순위였다면,
이제는 아이와 함께 채워나가는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것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세계가 송두리째 확장되는 이야기다.
나는 꽤 괜찮은 딜을 한 것 같다.
아주 먼 훗날, 훌쩍 커버린 내 아이가 사춘기 소년의 쑥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물을 때가 오면,
나는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이다.
"엄마, 나 때문에 뭘 포기했어?"
"음, 포기한 게 아니야. 그냥 엄마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