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배를 탔다는 건

by 이로

오늘도 늦잠을 잤다.

알람을 다섯 번은 끈 것 같다.

눈 비비며 일어나 창밖을 봤다.

빌어먹을 미세먼지. 뿌연 회색빛 세상이 아침부터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대충 얼굴에 물만 묻히고 현관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는 또 고장이었다.

'아, 진짜.' 속으로 욕설을 삼키며 계단을 내려갔다. 15층에서 1층까지. 다리 근육이 찌릿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옆에 나랑 똑같은 얼굴의 좀비가 서 있었다.

어깨는 축 처져 있고, 눈은 반쯤 감겨 있고, 손에는 축 늘어진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와, 거울로 나를 보는 줄.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우리는 짠 것처럼 신호가 바뀌자마자 서로 다른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회사에 도착했다.

내 자리 의자는 오늘도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 앉으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노트북을 켰다. 로그인 화면에서 잠시 멈칫했다.

'오늘도 무사히...' 소심하게 빌었다.


팀장님은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왠지 모르게 싸늘한 기운이 사무실을 감쌌다.

나는 괜히 모니터만 노려봤다.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보고서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어깨가 무거웠다.

점심시간, 구내식당 메뉴는 또 김치찌개였다.

이쯤 되면 김치찌개는 우리 회사의 상징이 아닐까 싶었다. 옆자리 이 대리도 한숨을 쉬었다.

"또 김치찌개네요." 내가 말했다.

"그러게요, 지겹다 지겨워." 이 대리도 피곤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우리는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같은 배를 탔다는 건 이런 걸까. 맛없는 밥을 같이 먹는 동지랄까.

오후 내내 졸음과 싸웠다. 하품을 참느라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옆 부스 김 과장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 아저씨는 밤새 게임이라도 했나.' 조용히 웃었다.

다들 비슷한 처지였다. 쳇바퀴 도는 인생. 벗어나고 싶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다.


퇴근 시간, 지하철은 전쟁터였다. 끼여 타는 순간, 옆에 서 있던 사람이랑 어깨가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기계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마치 통나무처럼 나란히 서서 흔들리는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땀 냄새와 퀴퀴한 지하철 냄새가 뒤섞였다. 숨이 막혔다.

집에 도착했다.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하얀색 천장.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뇌가 없어져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은 날이었다.

아침의 미세먼지처럼 뿌옇고, 팀장님 표정처럼 싸늘하고, 지하철 칸처럼 좁고 답답한 하루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배를 타고 있지 않을까.

매일 아침 출근하는 지하철, 나를 기다리는 사무실 의자, 지겨운 김치찌개,

그리고 옆자리 동료의 하품 소리까지.

이 모든 게 하나의 거대한 배를 이루는 파편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배에 강제로 태워진 승객들이었다.

목적지는 불분명하고, 항해는 지루하고, 간혹 파도가 덮치기도 하는 그런 배.

이건 웃긴 일일까, 아니면 슬픈 일일까.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알람이 울리겠지.

나는 또다시 미세먼지 가득한 창밖을 보고, 삐걱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숨을 쉬겠지.

그리고 지하철에서 또 다른 좀비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출근할 것이다.

도망가 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그래, 어쩌겠어.


그래도 가끔은 나쁘지 않다.

똑같이 지겨워하는 이 대리가 있어서, 꾸벅꾸벅 조는 김 과장이 있어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탄 동지들이니까. 침묵 속에서도 서로의 피곤한 어깨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 작은 공감대가 어쩌면 이 배의 노를 젓게 하는 유일한 힘이 아닐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언제쯤 이 항해는 끝날까.

뭐, 그래도 함께라면 견딜 만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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