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점심시간에 혼밥을 했다.
회사 근처 새로 생긴 파스타집.
분위기가 좋다고 소문났지만, 혼자 가서 파스타를 먹는 건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
창가에 앉아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맞은편 테이블에선 커플이 낄낄거렸다. 접시 위 파스타 면이 왜 이렇게 길어 보이는지.
솔직히 말해볼까. 나는 겁쟁이다. 용기가 없다는 말에 더 가깝겠지.
고등학교 때 짝사랑하던 애가 있었다. 매일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쳤다.
걔가 지나갈 때마다 샴푸 냄새가 확 풍겼다. 그 향기가 좋아서 괜히 한 바퀴 더 돌아서 버스에 타곤 했다.
고백?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졸업할 때까지 ‘안녕’ 한마디도 못 해봤다. 그게 내 첫사랑의 끝이었다.
짝사랑은 혼자 시작해서 혼자 끝내는 거라고, 그때 처음 배웠다. 씁쓸했지만, 뭐 어쩌겠어.
대학에선 좀 달라질 줄 알았다.
동아리에 들어갔다. 번개 모임도 열심히 나갔다.
떠들고 웃는 분위기는 좋았지만, 뭔가 선을 넘는 건 항상 주저했다.
발표? 절대 내 차례가 오는 일이 없길 바랐다. 조별 과제는 늘 투명인간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내 이름이 박힌 건 학위증이 전부였다.
취업도 다르지 않았다. 면접관 앞에서는 그저 로봇처럼 준비된 대답만 읊었다.
내 진짜 생각?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합격만 하면 됐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뭘 하고 있는 걸까.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히죽거리며 웃으면 바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고.
눈물을 찔끔거리면 나약한 사람처럼 보일 거라고.
그래서 늘 표정 없는 얼굴로 살았다. 감정을 드러내면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손해 보는 건 질색이었으니까.
사랑을 하면 이별을 할지도 모른다. 그게 뭐 대수라고.
이별의 아픔이 두려워서 시작조차 안 하는 건 바보 같은 짓 아닐까.
내 친구 중에 그런 애가 있었다.
연애는 귀찮고, 상처받기 싫다며 늘 혼자였다. 근데 가끔 보면 너무 외로워 보였다.
톡방에서 '아, 외롭다'를 연발했지. 그런 애들 보면 좀 답답하다.
사랑이 꼭 해피엔딩이어야만 가치 있는 건 아니잖아.
언젠가 한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용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알 수도, 느낄 수도, 배울 수도 없다고.
그리고 궁극적으로 진정한 자유를 빼앗기게 된다고.
그 문장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내 안의 수많은 가능성들을 겁쟁이라는 이름으로 짓누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혼밥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회사에서 신규 프로젝트 팀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일이다.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지레 겁먹고 포기했을 거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번 프로젝트는 좀 달랐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였다. 성공할 확률은 낮았다.
실패하면 어쩌지? 팀장님한테 깨지고, 동료들한테 무능하다는 소리 들을 수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끌렸다.
어차피 지금도 별 볼일 없잖아? 실패해도 지금이랑 똑같지 뭘.
나는 마우스를 쥐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신청 버튼에 커서를 올리고 잠시 망설였다.
1초가 1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래, 까짓 거!' 눈 딱 감고 클릭했다. 신청 완료.
어깨에 짊어졌던 알 수 없는 무게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비록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뭔가 해냈다는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혼자 심각하게 앉아 있는 나를 옆자리 대리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뭐 어때. 바보 같은 짓도 아무나 하나.
용기는 거창한 게 아닐 수도 있다.
파스타집에서 혼자 당당히 창가에 앉는 것.
짝사랑하는 애한테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
익숙한 루틴을 깨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작은 용기였다.
그리고 그 작은 용기들이 모여서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진정한 자유란,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숨 쉬는 게 아닐 것이다.
조금은 바보 같아 보이고, 조금은 나약해 보일지라도, 기꺼이 뛰어들 수 있는 마음.
나는 이제 그 용기를 갖고 싶다. 그리고 마침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수많은 것들을.
파스타는 좀 싱거웠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