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고 있는 것들

by 이로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칙칙한 회색빛 천장이 나를 반겼다.

스물여덟, 나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삐걱거리고 있었다.

침대 옆 탁자 위에는 어제 마시다 남긴 콜라 캔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매번 다짐하지만, 밤샘 후 폭식하는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다.

나는 늘 이렇게 뭔가에 끌려다니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먼지처럼.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손님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요즘 하늘 너무 예쁘지 않아? 노을 질 때 색깔이 진짜 대박이더라." 컵을 닦던 내 손이 멈칫했다.

노을? 나는 노을을 본 게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안에 뭔가 쿵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날 퇴근 후,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해가 지는 시간이었다.

붉은색과 주황색, 보라색이 뒤섞인 하늘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런 아름다움을 왜 이제야 본 걸까.

생각해 보면 내 삶은 늘 '놓친 것들'로 가득했다.

거리를 걷다가 문득 스쳐 지나간 길고양이의 부드러운 털.

그 고양이의 눈빛에 담긴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휴대폰을 보며 걷느라 나는 늘 그런 것들을 놓치고 살았다.

이어폰을 끼고 듣는 음악은 세상의 소음을 차단해 줬지만, 동시에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마저 지워버렸다.

빗방울이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나는 그런 것들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미안하다."

문득 세상을 향해 내뱉었다. 스쳐 지나간 모든 것들에 대한 사과 같았다.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친 풍경들, 귀 기울이지 못한 소리들, 미처 느끼지 못한 작은 행복들.

돌이켜보면 그것들이 내가 충분히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대신 나는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고, 듣지 않아도 될 것을 듣고,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을 느꼈던 시간들로 가득 채웠다.

인터넷 기사의 악성 댓글들, 남들의 시기 어린 시선, SNS 속 부러움 가득한 삶들.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불행에 중독되어 가는 것 같았다.

마치 독이 든 음료를 마시는 줄도 모르고 들이켜는 사람처럼.


나는 의식적으로 세상의 작은 것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덮고 창밖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이어폰 대신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차의 향을 맡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따뜻한 부드러운 맛이 혀끝에 닿는 순간, 작은 행복이 차올랐다.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여전히 불필요한 것들이 내 시야를 가릴 때도 있다. 불쑥 찾아오는 불안감이나 후회 같은 것들. \

그럴 땐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것들을 파묻는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흙을 뿌린다.

보지 않아도 될 것들, 듣지 않아도 될 것들, 느끼지 않아도 될 것들을 그 안에 묻어버린다.

흙을 뿌리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함.

그리고 그 흙 위에는 새로운 씨앗을 심는다.

내가 보고 싶은 것들, 듣고 싶은 소리들, 느끼고 싶은 행복들을. 아주 작은 씨앗들이지만,

언젠가 푸른 새싹이 돋아나고 예쁜 꽃을 피울 거라 믿는다.


나는 이제 안다. 나를 괴롭혔던 것들이 사실은 내 선택이었다는 것을.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느낄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의 힘은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혹시 나의 행복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것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천천히 그것들을 파묻고, 그 위에 나만의 흙을 뿌린다.

그리고 그 위에 나만의 진정으로 원하는 씨앗을 심어보자.

나의 삶은 이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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