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꾸역꾸역 사람들 틈에 끼어 서 있었다.
모두가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박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들. 어딘가 지쳐 보이는 눈빛들. 문득 생각했다.
‘다들 혹시, 자기 별에서 온 건가?’
나는 어릴 때부터 유별나게 생각을 하는 자주 했다.
남들 다 지구인이라고 할 때, 나는 왠지 모르게 내가 이 별에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내가 너무 감성적이었던가? 아니면 그냥 중2병이 좀 늦게 왔던 건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이러고 있는 나 자신이 웃기기도 했다.
내 별에서는 뭘 했을까
혹시 나는 다른 별에서 오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다른 별에서 왔다면, 그 별은 어떤 모습일까?
중력이 낮아서 붕붕 떠다닐 수 있는 별? 아니면 온통 보석으로 뒤덮인 별? 상상만으로도 좀 즐거워졌다.
그리고 그 별에서 나는 무엇이었을까? 만약 내가 용사였다면? 지구를 지키러 온 특수 요원?
아니면 그냥 평범한 행성인? 그냥 거기서도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나'였겠지.
지금처럼 지하철에 갇혀 한숨 쉬는, 그런 존재.
또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이 별에 오기 전 부여받았던, 엄청나게 중요한 미션이라도 잊어버린 건 아닐까? 근데 생각해 보면, 그런 거창한 미션이 있을 리가 없다.
내 기억력은 딱 어제저녁 메뉴까지가 한계인데.
이 별이 너무 좋아서
근데 이상하게도,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도 나는 이 별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뜨는 해가 좋고, 맛있는 과일 향이 좋고, 길고양이들이 꼬리를 살랑이는 것도 좋다.
가끔은 짜증 나는 상사도 있고, 빌어먹을 야근도 있지만, 그래도 이 별은 나름대로 살 만하다.
특히, 힘들 때 친구들과 수다 떨며 밥 먹는 순간.
그 순간만큼은 진짜 이 별에 정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구별의 치킨은 진짜 미쳤지. 굳이 다른 별로 갈 필요가 있나 싶다.
나는 어쩌면, 이 별이 너무 좋아서 여기에 정착하기로 한 행복한 이주민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구별 주민등록증이라도 발급받은 걸까?
그 생각에 '지구인' 스탬프가 찍힌 나의 운전면허증을 떠올렸다.
당신은 어떤 이주민인가요?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창밖으로는 밤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저 많은 불빛들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별'에서 와 이 '지구'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겠지.
어떤 이는 아직도 자신의 별을 그리워할 것이고, 어떤 이는 이 별에 완벽하게 적응했을 것이다.
나처럼 어정쩡하게 중간에 걸쳐 있는 사람도 있을 거고.
중요한 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별에서 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이 별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주민들에게, 파이팅!